다해 연중 제 33주일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전례적으로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교회는 대림 제 1주일로 새로운 한 해의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신앙인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구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살펴봐야 합니다. 세상적인 것에만 집착을 하며 살아간다면 하느님 나라에서는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지 않으면 참된 가치가 아닌 것에 현혹되어 버리고, 어느 순간 다른 이들을 현혹시키게 됩니다.

그러므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시련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 시련은 그저 시련일 뿐이고, 그 너머에 하느님께서 준비해 주신 큰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지금 이 순간을 인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련만을 바라본다면 그 시련에 굴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간다면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이겨낼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슬기롭고, 얼마나 인내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왔는지를 돌아봅시다.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할지라도 100일을 넘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상 것들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꽃도 지고, 풀은 시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하느님만은 변함없으십니다.

2.1. 하느님을 보지 않고 성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이들

성전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곳입니다. 성전이 아름다운 것은 지존하신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표현된 것이고, 성전이 거룩한 것은 성전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느님의 거룩함이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전의 외적인 아름다움만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 눈에는 하느님께서 머물고 계심이 보이지 않고, 성전을 꾸미고 있는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만이 보였던 것입니다. 이들은 아름다운 대리석이나 황금 포도덩굴 등, 성전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갔습니다.

 

성전의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지 못한다면 그는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눈에는 그저 건물만 보이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오! 아름다워라! 찬란한 세상, 주님이 지었네~”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며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지 못하는 이들은 세상의 화려한 것들에 취하게 되고, 좋은 것들, 새로운 것들, 편안한 것들, 맛있는 것들에만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2.2. 성전파괴를 예고하시는 예수님

사람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보고 감탄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21,6)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은 기원 후 70년에 로마군의 공격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루살렘은 기원 후 70년에 로마군의 공격으로 파괴되고 맙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선물의 내용이 중요하지 포장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느님을 등지고 성전의 아름다움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선물의 내용보다는 포장지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3. 성전 파괴 때의 표징들을 묻는 사람들

예수님께서 성전의 파괴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사람들은 “①성전이 언제 파괴될 것인지를. ② 그 큰 재난을 앞두고 어떤 징조가 있을 것인지를.”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도 중요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세상 것들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없어서, 기회가 되지 않아서,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하면서 핑계를 대고, 뒤로 미룹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이어지면 그날과 그 시간에 분명히 당황하고 절망할 것입니다.

 

내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도 언젠가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주님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숨이 멈추면 육체의 모든 움직임은 정지하게 되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숨이 멈추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해 놓아야 합니다.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기에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하고,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2.4. 그날과 그 시간을 준비하는 이들의 자세

①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루카21,8)

예수님께서는 그 때와 상황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을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루카21,8)라고 말씀하십니다. 속는다는 것은 모르기 때문에 속는 것이고, 자신의 욕심이 있기 때문에 속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와서 자신이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참조: 루카21,8)고 할 것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기꾼들이 그렇게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습니다. 종말을 예고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아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고,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자처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②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루카21,8)

펠릭스 총독 시대에도 이집트에서 온 한 열광가가 자기의 음성으로 예루살렘 성벽을 무너뜨린다고 자랑하며 약 3만의 백성을 모았다고 합니다. 튜다는 자기를 위대한 인물로 선전하여 추종자를 얻었고, 갈릴래아 사람 유다도 상당한 추종자를 얻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죽자 그들을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흩어지게 됩니다. 자칭 구원자라고 말하는 사기꾼들은 예나 지금이나 신앙인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루카21,8)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녀들은 슬기롭게 그런 유혹들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런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너무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공동체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목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③ 남을 속이지 말라(루카21,8).

신앙생활하면서 남을 속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타인을 위하는 척 하면서도 실지로는 자기 욕심을 챙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를 과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이끌어 준다고 하면서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금전의 이익으로 유혹하면서 신앙인들을 유혹하여 모든 것을 빼앗아 가는 사기꾼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열심한 체, 잘하는 체, 옳은 체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위장을 합니다. 그런데 자세히 모르기에 넘어갑니다. 그가 자신의 모습을 교묘히 속이기에 넘어가고, 나 자신의 재물에 대한 욕심을 부추기기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속는 사람의 마음 안에 잘못된 것이 있기에 그가 속는 것입니다. 속아서도 안 된지만, 남을 속여서도 안 됩니다. 남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은 속일 수 없음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④ 무서워하지 마라.(루카21,9)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고하시면서 세상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상징적으로 말씀하십니다.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루카21,9-11)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저런 소문들, 표징들을 보더라도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일어날 것은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즉, 회개하고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는 무서운 재앙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디기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닥쳐올 일이라면 어떻게 할까요? 당연히 관심을 갖지 않겠습니까?

 

⑤ 박해를 각오하여라.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주어지는 표징들에 앞서 박해를 당할 것을 예고 하십니다. “너희를 회당과 감옥에 넘기고, 내 이름 때문에 너희를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고 갈 것이다.”(루카21,12)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회당과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당했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사도들이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서른아홉 대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고, 죽을 뻔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들이 당해야 할 것을 알고 계셨으며 그것을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 두셨습니다.

 

⑥ 박해는 예수님을 증언할 기회

예수님께서는 박해의 순간이 “증언할 기회”(루카21,13)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사도들을 박해자들 앞에서 예수님에 관하여 증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되셨다가 부활하셨다는 것.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게 된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기뻐했습니다(사도행전5,41 참조).

 

우리의 순교자들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순교자들은 체포되어 관장의 심문대나 고문대 앞에서도 포교활동을 하였습니다. 관장 앞에서 신앙을 변론하거나 교리 해설을 통하여 오히려 천주교의 옳음을 전하였고, 많은 비유들을 곁들인 교리 해설은 관장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관장들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말 잘 하는 귀신이 붙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또한 부녀자들의 당당한 증언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어린 아이에서부터 시작하여 80세 노인들조차도 논리정연하고 알맞은 비유로 그들의 심문대 위에서 포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신자들이 거의 스스로 공부하고 익힌 내용들이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전문적인 교리신학원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서양 신부님들의 서툰 우리말로 놀라운 신앙적 지식을 간직했다고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서적이나 신앙인들의 구전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익혔던 것입니다. 공동체가 공동체에게 교리를 전해주고, 글을 모르는 사람들도 입에서 입을 통해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된 것입니다.

 

⑦ 내가 너희에게 지혜를 주겠다.

제자들은 박해 때에 마음에 깊이 새기게 될 한 가지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법정에서 어떻게 항변할까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법정에 섰을 대에 그리스도를 배반하지 않도록 미리 항변의 말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들에게 언변과 지혜를 주실 것임을 이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14 그러나 너희는 명심하여, 변론할 말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마라. 15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21,14)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 앞에서 제자들이 믿음을 고백하고 주님을 증언할 수 있도록 언변과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을해박해(1815년)때의 김시우(알렉스)라는 순교자는 반신불구로 매우 가난하여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면서 교우들의 애긍시사를 받아 생명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글을 좀 알았으므로 서책을 왼손으로 베껴 교우들을 가르쳤고 외교인들까지도 입교시켰습니다. 그러던 중 포졸들이 부활 축일에 노래산(老萊山) 교우들을 체포할 때, 알렉스는 자신이 제외되는 것을 보고 울면서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기를 애원하였으며, 마침내는 체포되었습니다. 알렉스는 관장 앞에서 옛 중국 고사들을 들어 교리를 대단히 유창하게 변론했기 때문에, 창피를 당한 감사는 그의 턱을 부수어 말을 못하게 하였으며, 더욱 심한 고문을 가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⑧ 가족과 친구들의 배반과 죽임

예수님께서는 박해를 각오하라고 말씀하시면서 “16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루카21,16)라고 말씀하십니다. 친척과 친지들이 제자들을 박해자들에게 넘기는 일이 일어났고, 지금도 신앙 때문에 가정 안에서, 공동체 안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부모가 자식을 죽이는 경우는 신앙적인 교육을 안 시키는 데서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녀가 학교 공부를 한다고 하면 성당에 가지 않더라도 부모는 자녀를 나무라지 않습니다. 권하지도 않습니다. 성당에 가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장한 자녀들은 시간이 있어도 성당에 다니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이든 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이 성당에 안 다녀서 큰일입니다.”하고 걱정을 합니다. 자녀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게 만들면, 자녀들이 영원한 생명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자녀를 박해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⑨ 예수님 이름 때문에 당하는 미움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열정적으로 봉사를 하면 열정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합니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부담스러워서 성당에 못 나오겠다고…,”자신은 따라 할 생각은 안 하고, 그를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루카21,1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 안에서 그들의 잘못된 행동이 들어나기에 사람들은 신앙인들을 미워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미움을 당했고, 박해를 당했고, 목숨까지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한 것을 얻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18 그러나 너희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21,18)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의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는 그들이 목숨을 잃고 멸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게 하느님 나라를 향에 달려오는 사람들로 보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박해받는 교회를 지켜보시며 당신의 손을 그 위에 뻗으십니다.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는 얼마만큼 예수님께서 우리를 생각해 주시는지 알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이가 살아 있습니다. 영혼이 죽지 않기에 죽음은 죽음이 아닙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70년 근력이 좋아야 80년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겪는 어려움을 아주 작은 순간으로 보시고, 그 작은 순간에도 당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내 놓는 신앙인들 때문에 행복해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결국 나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는 신앙 때문에 겪는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끝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좋은 결과를 이루게 해 주실 것입니다. 믿고 그분께 의지합시다.

 

⑩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21,19)

참고 견딘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먼 미래보다 지금 앞에 당면한 문제들이 나를 힘들게 만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참으로 많은 어려움이 밀려옵니다. 신자들과의 갈등, 그리고 가족들과의 갈등… 그런 갈등 속에서 가끔은 이런 분심도 듭니다. “내가 이러면서까지 신앙생활을 해야 하나…좀 쉬었다가 성당 다니면 안 될까?”

이런 마음이 들었던 나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21,19)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굳게 믿고 참고 견디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봅시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다해 31-34주일, 연중시기(다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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