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약력
1. 1821년 8월 21일: 충청도 솔뫼(현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김제준 이냐시오와 고 우르술라의 장남으로 출생.
2. 1836년 7월 11일: 모방(Maubant)신부에 의해 신학생으로 선발됨. 국내에서 성직자로 양성키 어렵다고 판단 최양업(崔良業,토마스), 최방제(崔方濟, 프란치스코)와 마카오 파리 외방전교회 경리부로 보내기로 결정, 12월 3일 서울 출발.12월 28일: 변문(邊門) 도착. 요동(遙東)과 만주를 거쳐 중국 대륙을 횡단한 끝에 마카오 도착(1837년 6월 7일).
3. 1836년 ~ 1839년: 마카오 민란 등으로 두 번 필리핀 마닐라의 롤롬보이로 피신
4. 1840년~ 1841년:마카오 대표부에서 철학과 신학공부
5. 1842년: 조선으로 입국하기 위해 에리곤(Erigone)호의 세실(Cecille)함장의 통역사 자격으로 승선하였으나 세실 함장의 마닐라 행 결정으로 하선하여 9월 11일 상해(上海) 베지(Besi)에 머물며 입국 시도. 10월 2일 상해 출발하여 10월 22일 태장하(太莊河) 부근 요동 땅에 도착. 백가점(白家店)에 머물며 입국 시도.
12월 23일: 가난한 나무꾼으로 변장, 변문으로 향함. 단독으로 입국 시도하여 국경선을 넘어 의주를 통과할 수 있었으나 위험을 느끼고 돌아옴. 도중에 눈 위에 쓰러져 동사할 뻔 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백가점으로 돌아옴(1843.1.6)
6. 1843년: 음력 3월과 9월 변문에서 김 프란치스코를 만나 동북 국경 쪽 입국 방법을 의논. 12월 31 양관(陽關)에서 제 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Ferrol, 高) 주교 성성식 참석.
7. 1844년: 동북 국경을 통한 입국을 위해 2월 4일 출발. 경원(慶源)에서 조선 교회의 밀사들과 만나 동북국경을 통한 입국이 의주길보다 더 어렵다고 판단하여 4월 백가점에 돌아옴. 신학과정을 마치고 삭발례로부터 부제품까지 받음(12.15이전).
7. 1845년: 1월 1일 네 번째로 변문에 감. 1월 15일 귀국에 성공하여 서울 도착. 4월 30일: 11명의 신자와 함께 라파엘호에 탑승, 제물포를 출발하여 6월 4일 우송코우(吳松口)를 거쳐 상해에 도착.8월 17일: 상해 진쟈샹(金家基)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서품 받음.8월 24일 헝탕(橫塘) 신학교 성당에서 첫 미사. 8월 31일 라파엘호에 페레올 주교, 다블뤼(Daveluy) 신부를 태우고 상해 출발. 제주 용수리 포구에 표류.10월 12일: 강경(江景) 부근 황산포(黃山浦)에 상륙. 11월과 12월 서울 및 은이공소 순방.
8. 1846년 4월 8일: 은이공소에서 마지막 미사. 주교의 지시로 선교사 영입을 위한 새통로의 개척을 위해 5월 14일 마포 출발, 연평도를 거쳐 백령도에 이르러 청국어선과 접촉, 편지와 지도를 보내고 순위도(巡威島)로 돌아왔을 때 뜻밖에 6월 5일, 관헌에게 체포됨.6월 10일: 해주 감영으로 이송됨. 6월 21일 서울로 압송되어 포청에 갇힘. 7월 20일 르그레즈와와 리브와 등 스승 신부들에게 하직 편지 씀. 8월 29일 페레올 주교와 교우들에게 하직 편지 씀. 9월 16일 군문효수형으로 새남터에서 순교. 김 신부의 시신은 10월 26일 미리내로 안장되었고, 1901년 5월 21일 용산 신학교로 이장 되었으며, 1960년 혜화동 대신학교 성당으로 이장됨.
9. 1925년:7월 5일: 비오 11세에 의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순교자 79명과 함께 시복됨.
10. 1949년: 11월 15일: 한국 성직자들의 주보성인으로 결정됨.
11.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다른 한국 순교자 102명과 함께 시성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