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자신을 겸손히 낮춤
내가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고, 몰라도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해도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사랑을 알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하느님 앞에 나아갔을 때,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이 무슨 도움이 될까요? 하느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지금 알고 있고 알고자 하는 것들이 나의 구원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내가 알아야 하는 것은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몰라도 되는 것은 너무 지나치게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분심거리가 생기고, 엉뚱한 길로 빠져 버리게 됩니다.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다른 것에 몰두하는 것은 후회할 행동입니다.
내 귀에는 수많은 말들이 들려옵니다. 내 눈에는 수많은 것들이 보입니다. 그런데 내가 듣고 있고 보고 있는 것들이 정작 내 영혼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더 많이 알고 더 깊게 알수록 더 거룩하게 살지 않는다면 구원은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내가 알고 있지만 모르는 것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듣다보니 둘 다 서로 정확하게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공부한 내용이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하고, 자신이 체험하거나 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한 이야기를 전하다보니 대화는 깊이가 없었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며, 심지어 틀린 내용을 가지고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왜곡된 정보일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이 앞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할 때 부끄러운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상대방과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자세입니다. 그리고 알아야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나는 내 구원 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고, 하느님 앞에서의 나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게 됩니다. 유익함을 알고 배우고자 한다면 남이 나를 몰라주고 하찮게 여기는 것을 오히려 더 좋아해야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고상하고 유익한 지식은 자신을 참되게 알고 자신을 낮추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상대방의 부족함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부족한 것을 보았다 할지라도 내가 그보다 낫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지금은 착한 처지에 얼마 동안이나 놓여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합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할 때 나는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다음의 네 가지를 깊이 생각해 봅시다.
하나. 내가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 그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둘.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나의 구원에 어떠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까? 나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셋. 내가 말하고 있는 것들이 나를 교만하게 만들거나 죄짓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것을 내가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할 때는 언제입니까?
넷. 겸손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나 자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지식도 필요한 것이 있고 필요없는 것이 있습니다. 나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들은 무엇인지 늘 살펴보고, 나를 구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들을 조심하며 더욱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