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느 순간 신앙인보다는 기능인으로 살아가는 유혹을 받고, 신앙에서 점점 멀어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우리 주변에 쉬는 교우들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열정적으로 봉사를 하고, 열정적으로 매일 미사에 참례했으며, 교회의 유지를 위해서 아낌없이 자신의 것을 내어 놓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이 식어서 등을 돌리고, 잠시 주저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열심하던 형제자매들이 쉬고 있을까요? 왜 그들의 열정이 식어 버렸을까요? 누가 그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었을까요?
우선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는 사제입니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 긍정해 주지 않고, 독선적인 모습이나 편을 가르는 모습을 바라보게 되면 마음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사제와의 갈등이나 사제의 부족한 면을 바라보면, “그래! 이 신부님 가신 다음에 다시 기쁘게 신앙생활 하자!”하고 살며시 뒤로 물러납니다.
또한 형제자매들의 모습 안에서 힘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칭찬해 주지 않고, 하나를 하면 하나를 더 얹어서 시키고, 자신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고 마치 종을 부리듯 대할 때 “이제 그만 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제가 마음에 들면 또 열심히 좁은 문을 향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사제를 통해서 영적으로 도움을 받으려 하고, 사제의 부족한 모습 안에서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바라보며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감사하게 됩니다. 사제가 거부감이 없으니 미사참례나 기타 신심활동 및 봉사 등이 기쁘게 되고, 더 나아가 어떤 사제가 부임하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해 나가며, 자신의 신앙을 키워 나갑니다. 그렇게 좁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형제자매들의 관심과 격려도 신앙생활이나 봉사활동에 큰 도움이 됩니다. 칭찬을 받고자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제자매들의 칭찬과 격려는 좁은 문을 향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사제와 신자들은 중요한 환경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제나 형제자매들 때문에 힘차게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반대로 마음이 다쳐서 뒤로 물러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러한 마음을 붙잡지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신앙공동체의 7-80% 이상은 내가 매일 미사에 참례하는지, 내가 봉사를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말도 걸지 않습니다. 그들은 나의 부족함을 보지도 않고, 나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과의 갈등이나 칭찬이 내 삶의 전부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칭찬도 자기 개인 생각이고 비난도 자기 개인 생각입니다. 단지 전체의 의견처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앞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마음이 다치기 때문에 화가 나고, 자기 자신이 어리석어 보이며,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얘야!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의 문은 크고 넓단다. 내 감정에 충실하면 멸망의 문으로 향하게 된단다. 그 미움과 분노, 서운함을 나를 위해서 버릴 수는 없겠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있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 걸려서 구원을 포기하시겠습니까? 또한 좁은 문을 향해서 나아가는 형제자매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나는 어떤 보속을 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