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면: 자비로우신 하느님

자비로우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우십니다. 그 자비에 우리는 의탁해야 합니다. 그런데 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풀지 않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마음을 굳게 닫아걸고,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시는 예수님을 단죄합니다.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루카15,12) 그런데 그것은 자비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베풀지 않는 그들의 생각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의인에게나 죄인에게나 똑같이 내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자비에 의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시기 위해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길을 나선 목자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루카15,4). 양을 잃었기에 찾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목자는 자신의 양들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백 마리의 양들이지만 목자의 눈에는 모두 들어오고, 모두 소중합니다. 목자는 한 마리 길 잃은 양을 찾아 광야와 계곡을 누빕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아 기뻐하면서 어깨에 메고 돌아옵니다. 양 한 마리가 목자에게는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양을 사랑한다면 모든 양 한 마리 한 마리가 소중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쁨을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루카15,5-6)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는 것처럼, 모든 것들이 다 소중합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함께 기뻐해 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길 잃은 죄인 하나를 구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느님의 마음. 내가 믿는 하느님은 바로 이런 분이십니다.

 

그 양이 다른 양들보다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 양이 목자의 양이기 때문이고, 그 양이 사나운 짐승들에게 잡혀먹을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흔 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아 나선 목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오로지 그 길 잃은 한 마리 양 밖에는 관심이 없나보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유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자, 그들도 구원의 대상임을, 하느님 자비의 대상임을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알려 주시기 위함이고,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의 자비를 실현하고 있음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처럼 누구를 단죄하거나 소외시키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됩시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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