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기쁨
하느님께서는 세상 모든 인간이 당신의 자비에 의탁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기뻐하시는 이유는 그 회개한 죄인이 하느님께 의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주고 싶어 하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겸손하게 주님께로 나아오는 이들에게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당신 사랑과 구원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루카15,7)라는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을 통해서 하느님의 마음을 알려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짓지 않은 의인들의 삶을,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의 삶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이유는 하느님의 자비를 청했기 때문이고,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의인 아흔 아홉은 언제나 하느님 마음을 기쁘게 하지만 길을 벗어난 한명의 죄인은 언제나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녀가 회개를 하니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그렇다고 큰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은전 한 닢을 잃은 어떤 부인의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이 여자는 무척 가난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에게 있어서 열 닢의 동전은 전 재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은전 한 닢은 하루의 노동의 대가가 되는 돈이었다고 합니다. 한 데나리온과 같은 액수인 듯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은전을 잃어버렸을 때의 행동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알려 주십니다.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루카15,8)
은전 한 닢은 별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부인에게는 소중한 것입니다. 이 부인이 은전을 찾으려고 샅샅이 뒤지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이렇게 마음 쓰신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의 길을 밝혀 주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분.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 주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십니다. 그래서 당신 아들까지도 내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잃었던 은전을 찾고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루카15,9)라고 말하며 그녀의 기쁨을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하시면서 느끼시는 기쁨이 바로 이런 기쁨입니다. 그들이 바로 잃었던 양이고, 그들이 바로 잃었던 은전입니다. 그런데 “친구들과 이웃”(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불러 함께 기뻐하려고 하지만 그들은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해야 하고, 예수님의 구원을 받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15,10) 그러므로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사랑해 주시니, 내가 그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안다면 다른 이들도 그렇게 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주변의 사람들을 죄인으로 단정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밖에 모르시는 분이십니다. 그 사랑을 받고 있는 나도 사랑밖에는 몰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죄인으로 만드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부족하다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함께 주님께로 나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방법이고,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