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와 라자로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루카16,19)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는 신분이 높음과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삶에는 문제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그가 한 대로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부자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가 누워 있었는데 그는 종기투성이의 가난뱅이였습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루카16,21)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그렇게 그 부자의 집 앞에서 구걸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은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는 것입니다. 라자로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라자로에 대한 측은한 생각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부자는 너무도 풍족하여 라자로의 그런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고,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갔습니다. 부자도 죽어서 묻혔습니다. 두 사람의 생활은 지상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지만 죽은 후에도 그 차이는 더 커집니다. 지상에서와는 반대로 라자로는 하느님의 나라로 갔고(아브라함 품), 부자는 땅에 묻히게 됩니다. 즉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죽어서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설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가난해서 라자로가 천국으로 갔고, 부자는 부유했기에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라자로는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고 살았기에 하느님께로 간 것이고, 부자는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재물에만, 안락한 삶에만 관심을 가졌기에 하느님께로 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를 바라보고, 무엇을 원하며 살아가는지에 따라서 내 영생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 하느님께 의탁하며 살아간다면 나는 더욱 겸손해질 것입니다. 내 것만을 찾지 않고, 내 옆에 있는 이들의 삶도 바라볼 것입니다. 그렇게 자비로운 생활을 해 나갈 것입니다. 내 삶은 온전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겸손하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자비를 베풀기 위해 겸손하게 주변을 둘러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 눈에는 무엇이 보이고 있습니까? 혹시 나 자신만 바라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