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속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가?
어느 시골 성당에 보좌신부로 새 사제가 부임을 하였습니다. 그날도 보좌 신부님은 미사 전에 고해소에서 고백성사를 주고 계셨는데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였습니다.
한 형제가 죄를 고백하는데
“신부님! 제가 사냥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냥 금지기간이라 사냥을 하지 않고 있는데 멧돼지가 자꾸 저희 고구마 밭을 망가뜨려서 제가 총으로 멧돼지를 쏘았습니다. 그런데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도 생명인데, 먹을 것을 구하러 저희 밭에 온 것인데 제가 총으로 쏘았으니 저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멧돼지도 하느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인데…, 앞으로는 사냥을 포기하려고 합니다. 신부님! 앞으로 제가 사냥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저에게 많은 보속을 주십시오.”
이런 고백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줄 몰랐던 보좌신부님은 당황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에게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는 사제관으로 뛰어가 본당신부님을 찾았습니다.
마침 본당 신부님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계셨습니다. 사제관 주방에 사람을 구하지 못하여 본당신부와 보좌신부가 번갈아 가며 음식을 준비하고 뒷정리를 하고 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신부님!”
보좌신부님은 숨을 헐떡이며 신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멧돼지를 잡았다는데 (보속으로) 무얼 얼마만큼 주어야 합니까?”
그러자 본당 신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멧돼지 고기는 킬로그램당 만원 주면 되지 않을까? 그 이상은 안 되네. 사제관 주방비가 그리 많지 않다네. 하지만 먹고 싶은 만큼 사오게.”
“……,”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는 작은 것에도 마음 아파하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이는 큰 것에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습니다. 고백성사를 보기 위해서는 성찰을 하고 통회를 해야 합니다. 성찰과 통회가 없는 고백성사는 형식적인 고백성사이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킬 의지가 없는 모습이며 은총과 자비를 청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또한 고백소에 들어왔다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것이며,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굳은 결심을 했다는 것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보속을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해소 문만 열고 들어와도 은총은 쏟아지는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고백을 하고, 어떻게 보속을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