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사도행전2. 기도하는사도들(2)

사도행전

2. 기도하는사도들(2)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성모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면서 기도에 전념합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성모님께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낳으신 동정녀 마리아는 예수님의 인간적 탄생을 지켜보았고, 성령강림을 통하여 태어나는 교회의 탄생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마지막으로 성모님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모님은 말씀이 많으신 분이 아니라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시는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그래서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셨고, 예수님의 말씀을 살아가셨습니다. 또한 성경은 성모마리아에 대해서 언급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교회가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해서 기록하였기 때문에 등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굳게 믿고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하던 곳: 다락방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여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면서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그들을 예수님의 사랑에로 불타오르게 하였습니다. 이제 내가 머무는 모든 곳은 그 다락방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는 성전도, 내가 회합을 하고 다양한 것을 배우는 교리실도, 구역반 모임이 이루어지는 곳도 다락방이 되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마음을 모아서 함께 기도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나눔 2: 나는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을 어떻게 하면 사도들이 기도에 열중하고 성령을 가득히 받았던 다락방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하나. 모든 공동체의 중심에는 예수님께서 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주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말씀 안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고,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으며, 그 말씀 안에서 기쁨을 나누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을 주는 기도하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말씀 안에서 머무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 나가고, 몸에 베이게 해야 합니다.

. 삶으로 드러내는 신앙을 통하여 서로 기쁨을 나누고 서로에게 힘을 주면서 하나가 된다면 그야말로 기도하는 다락방, 신앙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미사, 다양한 기도 모임 및 복음나누기, 구역모임, 레지오 등을 통해 키워나가면서 지속적으로 충전해 나가야 합니다.

. 기도공동체는 어렵거나 숨이 막히는 다락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레지오나 기타 다른 단체들 안에서 숨이 막히는 형제자매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말만 무성하고 실천은 하나도 없으며, 칭찬과 배려는 없고 지시와 질책과 형식만 남으면 어려울 수도 있고, 숨이 막힐 수도 있습니다.

. 구성원들이 기도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주님을 바라보는 이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공동체만이 성령의 이끄심에 온전히 맡길 수 있고, 기도하는 공동체만이 성령 안에서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하고, 뒷담화를 하지 않으며, 자발적으로 움직이며 배려하게 된다면 그 공동체는 행복이 넘치는 다락방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서로 존경하며 자연스럽게 나눔과 배려의 삶을 통해 포용력을 확대해나갈 때 많은 이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는 베드로 사도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난 유다의 빈 자리를 채우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선택하시고 그들 중 시몬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마태16,15-19) 그리고 베드로 사도에게 다른 형제들을 부탁하셨으며(루카22,31-32). 베드로 사도에게 당신 양떼를 맡기셨습니다(요한21,15-17).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로부터 수위권을 받으셨고, 그 권한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단순히 열두 사도중의 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마티아로 하여금 유다의 빈자리를 채우도록 보궐선거를 했고(사도1,15), 최초로 공개 설교를 하였고(사도2,14 이하), 유대원로원에서 사도들의 활동을 변호하고(사도4,8;5,29), 이방인 개종자 문제(사도10,24-28)와 구약율법의 문제(사도15,7-22)등에 있어서 주도적으로 활동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교회의 으뜸이기에 그 권한을 행사한 것입니다.

 

나눔 3: 유다는 끝까지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자비로우신 분이신지를 몰랐고, 유다의 구원을 위해서 몸소 인간이 되셨음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몰랐기에 예수님의 자비에 의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내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 유다는 예수님과 같이 다니며 생활했지만 그분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존경은 했지만 온전히 사랑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 그러기에 온전히 믿지 못했고, 배반까지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도 살면서 너무나도 힘든 일을 겪게 되면 예수님께 의탁하기보다는 좌절하며, 예수님을 등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교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주님께 용서를 청하며 온전히 주님께 의탁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나를 조건 없이 받아 주시고 용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 제게 예수님은 내어주는 사랑을 보여주신 분. 측은해하시며 청을 거절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에 있는 나무와 소년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내어주는 사랑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끝까지 사랑하는 소년에게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 그것이 예수님의 사랑, 아버지 하느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겐 우리 엄마가 그런 존재입니다. 80이 넘으셨어도 늘 뭔가 더해주시려고 미리 내게 뭐가 필요한지 걱정하시고 채워주시려는 나무 같은 분이십니다. 그래서 감사하고 눈물나게 가슴이 아픕니다. 때로는 엄마의 사랑에 보답을 못해서 더 가슴이 아픕니다. 아마도 제가 예수님께 사랑을 보답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받았으면 퍼서 다른 사람한테 주게 되나봅니다. 저의 삶을 돌아보면 예수님께 보답하는 것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한테 베푸는 것조차도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나의 이기적인 마음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려하고, 보답하는 데는 인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머리로 알고 있고 있기에 가슴으로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가끔 느낄 때는 내가 이러면 안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달라진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려고 합니다.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희생과 봉사, 절제의 삶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부족하지만 오늘도 힘차게 주님께로 나아갑니다.

. 엄마는 내 말 한마디에 항상 준비 해주십니다. 뭐가 먹고 싶다거나 필요한 것을 살짝 얘기하면 언제나 금방 내 앞에 마련해 주셨습니다. 기쁠 때는 엄마를 잊고 있어도 서운하다 하지 않으셨습니다. 필요할 때만 찾아도 항상 함박웃음으로 반겨주십니다. 잔소리를 해대도 그저 딸과 마주하면 마냥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엄마품은 참 따뜻하고 든든하고, 100% 내편이라 엄마 곁에 있으면 덩달아 내 맘이 풍요롭고 넉넉해집니다. 저는 예수님이 울 엄마처럼 편안하고 아주 좋습니다. 제 편에 서서 모든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흑과 백을, 가끔 반항해도 기도(대화)로 풀고, 마지막에는 평화로 가게 해 주십니다. 엄만 세상에서 필요한 지식을 가르쳐 주시지만 예수님은 지혜를 일깨워 주십니다. 울 엄만 언젠가 추억을 남기지만 예수님은 내 생명 끝까지 함께 하실 분십니다. 저는 예수님이 울 엄마처럼 좋습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가해 1-10주일, 연중시기(가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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