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화해하여라.

먼저 화해하여라.

구약에서는 성전에 가는 도중이나 제사 도중에는 다른 어떤 일이거나 무시 되었습니다. 유다인들은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행동이 가장 가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그 모든 것보다도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물론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웃, 친구 등과 소소한 문제 하나 해결 못하고 드리는 제사를 하느님께서 기쁘게 받아주시겠습니까? 그래서 제사를 드리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러 가기 전에 화해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사보다는 화해가 더 급선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5,23-24)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사람들은 죄를 짓고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내가 억울하게 만든 그 사람이 하느님께 탄식하며 탄원기도를 바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생신에 형제들이 싸우고서 함께 모여서 생일잔치를 한다면 아버지의 마음이 그리 편하시겠습니까?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싸우고 반목하면서 신앙생활을 할 때, 그것을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신앙인이 저래도 되나?”하고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의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며,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아갈 때, 주변의 사람들은 역시 신앙인들은 뭔가 다르구나!”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해와 용서의 바탕 위에서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려야지, 온갖 추악함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남편과 싸우고서 미사에 온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 자매는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백성사를 보고, 미사 전에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기쁘게 미사를 봉헌하게 집으로 가겠다고.” 그 후 그 남편도 신앙생활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참 어려운 결심을 했고, 행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옆에 있는 형제자매와 얼굴 돌리면서 미사를 봉헌하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 그것은 무딘 마음을 가진 행위이지 신앙이 아님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지나면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화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마태5,25)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화해는 인간과의 화해로도 생각할 수도 있고, 하느님과의 화해로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인간과의 화해를 생각해 봅시다. 상대방은 나로부터 실제로 손해를 입은 사람이며, “도중이란 이 세상을 말합니다. “재판관은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재판은 최후의 심판을 말합니다. “형리는 하느님의 심판을 실행하는 존재를 말하며, “감옥은 징벌을 받는 장소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라는 말씀입니다. , 화해는 할 수 있을 때, 기회가 있을 때 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죄를 지었다면 용서를 청하고, 하느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 가기 전에 회개 할 것은 깊이 회개하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기쁘게 살 수 있고, 그래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등을 돌리면 결국 벌을 끌어안으려고 몸부림치는 것과 같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을 때 반드시 해야 함을 강조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마태5,26)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빚을 지었다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면 결국 구원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갚을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결국 구원은 꿈도 못 꾸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기억하면서 나 또한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께로부터 용서받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형제자매들에게 너그럽게 대해 주어야 합니다. 화해를 청할 수 있을 때 청해야 하고, 잘못을 뉘우칠 기회가 있을 때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지 않으면 늦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 은총의 시간을 잘 이용하여 주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갑시다. 화해하고 용서를 청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내일이면 늦을 수도 있다는 것을 늘 명심합시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가해 1-10주일, 연중시기(가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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