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사람들(1코린2,6-10)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좋은 머리를 나쁘게 사용하여 남을 등쳐먹는데 사용하는 사람이 있고, 공동체를 분열시키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사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 형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저 형제는 좀 편하게 살면서 형제님을 이용만 하는 것 같은데 마음 상하지 않으세요?”
그러자 그 형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음 안 상한다면야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저 같은 사람도 있어야 공동체가 돌아가지 않겠습니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에 제가 하는 것이랍니다.”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면 되잖아요?”
“형제님! 저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저의 구원자이심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몸소 어리석은 사람이 되시어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리가 나쁘셔서 그러셨겠습니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당신이 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마찬가지랍니다.”
“형제님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우신 분이시군요.”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공동체가 여러 파로 나누었다는 소식을 듣고 코린토 공동체의 일치를 위하여 권고하고 호소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의 모든 신자들에게 신앙의 바탕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치하라고 권고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간(세상)의 지혜와 하느님의 지혜인 십자가를 대조시키면서 인간의 얄팍한 지혜만을 추구해서는 안 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일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신을 통하여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렇게 지혜로운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지혜를 담아주셨는데,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1코린2,7)
라고 바오로 사도는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는 무엇을 말할까요? 세상 우두머리들이 깨닫지 못한 그 지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아드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하느님 아버지께 속죄의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리석어 보입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것입니다.
사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구원 계획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제사로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이 신비”를 깨달을 수 있도록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이끄심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아는 사람들”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 안에 쌓여있던 “불신으로 이어지는 세상의 지혜”를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버려야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을 통해 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고, 하느님의 작은 도구가 되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지혜로운 사람은 하느님께 온전히 자기 자신을 맡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리고“이 어려운 것을 내가 왜 해야 하는가? 저 답답한 사람과 내가 계속 함께 해야 하는가? 내가 드러나지 않는 일을 왜 해야 하는가?”하는 생각들을 버리고 “십자가의 어리석음”을 기쁘게 선택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