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
“뭐~ 이런 것 쯤이야~”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죄들이 모여서 큰 죄를 이루고,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작은 선행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규정들을 기쁜 마음으로 성실하게 지켜 나갈 때, 어느 순간 의로움으로 가득 찬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지키는 것을 떠나서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통해 형식적으로 살아가고, 자신을 합리화시키는 삶이 얼마나 위험하고, 멸망을 확실하게 예약하는 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5,19)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은 계명을 충실히 지켰습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지켰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만 남게 된 것입니다. 안식일 규정이 그렇고, 정결례 규정이 그랬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인들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제자들은 가장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스스로 지키고, 다른 이들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인들이 참되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왜 지켜야 하는지, 그것을 지킴을 통해서 얻게 되는 기쁨은 무엇인지도 잘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의 가장 작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도 턱걸이라도 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의미”보다는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소죄라 할지라도 그것을 범하는 사람이 누구냐가 벌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가르치는 사람이 그것을 범하는 것과, 또 그것을 범하도록 가르치는 것과, 모르는 사람이 실수로 범하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어머니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기도할 수 있도록 챙겨주고, 단식과 금육을 할 수 있도록 챙겨주고, 신앙생활을 격려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어머니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면 기도하기도 힘들뿐더러 단식과 금육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또한 평일미사나 주일미사에 참례하기도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부모가 덕이 부족하다면 서로가 큰 소리를 내게 될 것이고,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자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작은 행동으로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이 있고, 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손 하나 움직이지 않고 입으로만 살아간다면, 그래서 결국 말만 하게 된다면 그도 안 지키게 되고, 남도 그 모습을 통해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조그마한 것 하나에도 마음 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덕을 실천할 때,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람,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