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러운 자리에 머물기를 청하는 베드로 사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시는 이유는 예언된 모든 것들은 이루어져야 하며, “수난과 죽음” 앞에서도 굳은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수난과 죽음을 당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는 이 놀라운 광경에 너무 매료되어 함께 머물기를 청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순간의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동료들과 함께 이 기쁨 속에서 머물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태17,4)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큰 기쁨 속에 있었기에 자신들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태17,4)하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3년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고생했던 모든 보상을 한 순간에 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자신들이 기다리던 영광의 순간이 시작되어 자신들에게도 영광이 주어지리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머물 때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함께 편안함 속에 머물고자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걸으시는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고,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그 고통은 세상 모든 이들의 구원을 위한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이 기쁨으로 힘을 얻어 다시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기쁨을 가지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뜻입니다.
베드로 사도의 청원을 바라보면서 내가 주님께 드리는 청원을 생각해 봅시다. 내가 원하는 것과 내 만족을 위해 주님께 청하기보다는 주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청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어진 큰 기쁨 속에 머물고자 청할 때,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17,5)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유혹,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만 머물고 싶은 유혹”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기쁘게 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는 잘 지내고, 그와 함께라면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불편하거나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마음을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는 것이고,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려는 마음자세와 노력입니다. 주님과 함께 머물며,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과 함께 가며, 주님과 함께 만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