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마실 물을 청하시는 예수님

마실 물을 청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우물가에 앉으셨습니다. “때는 정오 무렵”(요한4,6)이었고, 먼 여행길에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우물에서 쉬시려고 가던 길을 멈추신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고을에 가 있었습니다.(요한4,8)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이렇게 먼 거리를 여행하시니 지치시고 시장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우리와 똑같은 처지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렇게 힘든 수고를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침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요한4,7) 하고 그 여자에게 물을 청하십니다. 참으로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부탁입니다.

그러나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오로지 유다인인 것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유다 사람이시면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마실 물을 청하십니까?”(요한4,9) 사실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지만 이 여인은 지금 자신에게 물을 청하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관계가 좋지 않다 하더라도 먼 거리를 여행한 여행자를 그렇게 대한 다는 것은 너무도 매정한 처사가 아닐까요?

사실 받은 것은 돌려줄 수 있어야 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물은 하느님께서 백성에게 베풀어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물을 또 다른 말로 하면 선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선물은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으로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셨으니 하느님께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 한 잔을 거저 주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것도 내어 줄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알고 계십니다. 이 여인의 고통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여인에게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한4,10)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그저 단순한 유다인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하느님의 선물을 청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일 그녀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았더라면 그녀는 예수님께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말씀드리고 구원을 청했을 것입니다. 사실 목마른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가끔은 상대방을 모르기에 실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외모나 입고 있는 옷으로 판단하기에 함부로 대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좋은 옷을 입고, 멋을 부리고 다니면 멋지고 지위가 있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실수는 잘못된 판단기준 때문입니다. 모든 이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대할 때, 초라한 몰골로 다가오는 이라 할지라도 존중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더 큰 은총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라면 은총은 밀려오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가진 것마저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그가 좋은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그가 손에 비싼 반지를 끼고 다닌다고 해서, 그가 사회적으로 활동을 많이 한다하여 귀하게 대해준다면 언젠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하느님의 자녀로서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내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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