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음“
마음이 닫힌 사람들을 봅니다. 세례자 요한을 받아들이지 못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닫혀 있어 그들이 보기에 자신들은 의인이고 예수님은 사회질서를 흔들어 놓은 불순분자로 보여 집니다. 마음이 닫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의 여인도 닫힌 마음으로 예수님을 대했습니다. “물 한잔을 청하시는 예수님의 청”을 거절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사마리아 사람이고, 예수님은 유다인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닫혀 있어서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몰라 뵙고, 더 나아가 물 한잔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사람에게만 잘 대해주고,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의 어려움을 외면한다면 그의 마음은 열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주어진 상황만 바라보고, 내가 하고 있는 일만이 옳은 것이며, 변화를 시도하거나 새로운 것을 제시하는 이들의 노력을 외면하는 것도 마음이 열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열린 마음은 인정할 줄 아는 것입니다. 내어줄 줄 아는 것,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내 것 만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을 챙길 줄 아는 것입니다. 주어지는 환난을 인내할 줄 아는 것입니다. 인내로 수양을 닦을 줄 아는 것입니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희망을 가질 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열린 마음으로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묵상하며 실천해야 합니다.
마음이 닫혀 있으면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고, 불평하고, 더 나아가 하느님까지도 외면하게 됩니다.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노예살이에서의 해방에 대한 감사를 차츰 잊어 먹고 불평을 하기 시작합니다. 종살이하던 그들의 습성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그런 삶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이집트의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시절을 그리워합니다. 강제노역으로 감독들에게 죽도록 맞으며 강제노동을 했던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빵을 먹던 것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에게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탈출16,3) 하고 항의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메추라기와 만나로 배불리 먹여 주셨지만 그들의 불만은 또 시작됩니다. 이번에는 물이 없다고 불평을 시작합니다.
모세는 큰 배신과 절망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집트 왕자로 지내던 40년을 뒤로 하고, 동족을 사랑한 죄로 이집트 왕실로부터 도망자가 되어 이트로의 목자로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런 모세를 하느님께서는 부르시어 백성의 지도자로 삼아놓으셨습니다. 말을 못한다고 거절했지만 아론을 대변인으로 삼아주시며 지도자의 일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렇게 백성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지만 백성들은 언제나 불평과 불만입니다. 모세는 “어째서 나와 시비하려 하느냐? 어째서 주님을 시험하느냐?” 하면서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4 “이 백성에게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제 조금만 있으면 저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탈출17,4)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마음을 아셨을 것입니다. 또한 목마름으로 고통당하는 당신 백성의 마음도 아셨을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모든 것을 내어 주듯, 하느님께서는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물을 주십니다. “네가 그 바위를 치면 그곳에서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그것을 마시게 될 것이다.”(탈출17,6) 라고 말씀하시자 모세는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물을 마시게 됩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느님께 청하는 모든 것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어렵다고 하여 하느님께 불평을 드려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느님께 원망하던 곳,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는가, 계시지 않는가?” 하면서 주님을 시험하였다 해서, 그곳의 이름을 마싸와 므리바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닫혀 있으면 내 것 만을 추구하다가 더 큰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느님도 보이지 않습니다. 열린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