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을 이겨낸 사람들2- 다니엘과 수산나

다니엘과 수산나

수산나라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요야킴의 아내로서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편 요아킴은 매우 부유한 사람으로서 큰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해에 어떤 두 원로가 백성 가운데에서 재판관으로 임명되었는데, 그들이 줄곧 요아킴의 집에 있었으므로, 소송거리가 생기면 모두 요아킴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 두 원로는 매일 수산나를 바라보며, 요아킴의 아내 수산나에게 품지 말아야 할 감정을 품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눈이 가고, 마음이 있는 곳에 몸이 가 있으니 그들은 유혹에 넘어가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욕망만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들은 양심을 억누르고 하늘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돌린 채”(다니13,9),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기에 알맞은 날을 엿보고 있었습니다. 유혹과 유혹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도 있지만 유혹과 유혹 사이에서 유혹을 선택하고, 그 유혹을 삶의 중심에 놓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두 원로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산나가 목욕을 하기 위해 정원에 혼자 있는 것을 본 그들은 수산나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 정원 문들은 잠겼고 우리를 보는 이는 아무도 없소. 우리는 당신을 간절히 원하오. 그러니 우리 뜻을 받아들여 우리와 함께 잡시다. 그러지 않으면, 어떤 젊은이가 당신과 함께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당신이 하녀들을 내보냈다고 증언하겠소.”(다니13,20-21)

수산나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닥쳐올지를 알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녀는 꼼짝 못할 곤경에 빠진 것입니다. 이 흉악한 원로들의 말을 들어주면 주님 앞에서 죄를 짓게 될 것이고,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이들이 자신을 어떤 젊은 남자와 부정을 저지른 여인으로 판결하여 사형에 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선택을 하든 그녀에게는 둘 다 죽음의 덫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산나는 단호한 결심을 합니다. “주님 앞에 죄를 짓느니, 차라리 그렇게 하지 않고 당신들의 손아귀에 걸려드는 편이 더 낫소.”(다니13,23) 이렇게 말한 수산나는 크게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당황한 두 원로도 수산나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고, 사람들에게 수산나가 어떤 젊은이와 부정을 저질렀다고 거짓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두 원로는 자신들의 욕망이 채워지지 않자 수산나를 죽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수산나를 죽이겠다는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찬 두 원로는 다음날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기 위해 거짓으로 수산나의 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회중은 백성의 원로이며 재판관인 그들의 말을 듣고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할 권한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중이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이유는 이들이 두 원로의 거짓된 증언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아킴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고 살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감사보다는 시기심과 질투심이 생겼을 것이고, 요아킴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했을 것이며, “요아킴이 잘못되었으면…,”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는 수산나가 죄를 지었다고 하자 기회는 이때다.” 하면서 기뻐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회중이 요아킴과 수산나를 사랑했다면 구체적인 증거를 찾아서 수산나가 정말 죄를 지었는지를 알아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하는 이의 고통에 큰 관심이 있지만, 사랑이 없는 이들은 사랑하지 않는 이의 고통과 역경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도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감에 불탄 사람들처럼 그렇게 수산나를 죽이기 위해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사형이 선고되자 수산나는 ,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다니13,42-43)라고 탄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수산나는 주변 사람들을 쳐다보았습니다. 자신과 자신의 남편 요아킴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이 분노에 가득차서 자신을 죽어 마땅한 사람으로 쳐다보며 이제 자신을 처형하려고 끌고 가려 달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음흉한 미소를 짓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에게 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똑똑히 보여 주고 있다고 그들은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덧 하느님의 자리에 있었고, 그들 눈에는 하느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혹에 빠진 그들은 어느 순간 유혹 자체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벌을 받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죄가 세상에 드러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가 온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유혹과 유혹사이에서 유혹을 선택하고, 어느 순간 유혹 자체가 되어 버린 그 두 원로의 말을 진실로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들의 유혹을 붙잡았습니다. 그들은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갔습니다. 분노로 가득 찬 그들에게 수산나는 죽어 마땅한 여인이었습니다. 수산나에게 자비를 입었지만 그들은 결코 그 자비를 기억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수산나가 죄를 짓는 것을 본 것도 아닙니다. 만일 수산나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피해를 입힌 것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눈에는 수산나는 죽어야 할 사람입니다. 그렇게 끌려가는 모습을 두 원로는 바라보고 있습니다. “감히 자신들에게 대항한 수산나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은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다니13,46) 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수산나를 끌고 가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동의하여 사형을 선고했고, 이제 죽이려고 하는데, 그 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하는 젊은이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한 젊은이가 나타나 자신은 그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말하는 순간 이들은 자신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이라는 단어가 무척 무겁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은 다니엘에게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습니다.

 

다니엘은 백성들을 향하여 외쳤습니다.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다니13,48-49) 그러자 온 백성은 서둘러 법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순간 백성들은 자신들의 죄를 생각했습니다. 유혹에 넘어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않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유혹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의 하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또한 그 유혹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혹을 겪으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은 뒷전이 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막상 책임을 지라고 하면 후회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유혹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음모의 중심에 있는 두 원로는 당황하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진실이 드러나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두 원로는 다시 백성들을 선동하였을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들은 왜 이리 어리석습니까? 저 새파랗게 어린 젊은이의 말을 듣고 우리가 지금까지 내린 결론을 무시할 생각이십니까? 여러분은 그리도 어리석습니까? 저 어린 젊은이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저 젊은이가 여러분 모두 보다 지혜롭다고 생각을 하십니까?” 그러나 책임이라는 말을 들은 이들은 충동에서 벗어나 올바른 이성을 되찾았습니다. 다시 법정에 모인 이들은 이제 다니엘에게 원로의 지위를 부여합니다.

 

다니엘은 먼저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다니13,51)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먼저 심판을 합니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다니13,52-53) 이 말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시다는 것을 죄 많은 원로에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원로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 ,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다니13,54) 그런데 이쯤 되면 자신의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가 모두 드러났다면 이제는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청해야 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이 죄인은 계속해서 죄를 쌓아갔습니다. 그는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은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다니13,55) 재판석에 앉아서 이런 저런 판결을 내리던 그가 이제는 죄인임이 드러나 사형선고를 받게 된 것입니다. 또 다른 죄인은 마찬가지로 자신의 죄가 명백하게 드러났지만 역시 거짓말을 합니다. “떡갈나무 아래요.” 이렇게 마지막 기회마저 놓친 그들은 자신들이 수산나를 죽이려고 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재판석에 앉아서 약자들을 괴롭히고 자신의 욕망을 채웠던 그 두 원로는 이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은 영원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늘 불의한 심판을 했지만, 그들의 욕심과 탐욕과 욕망은 하느님 앞에 있는 그대로 드러나 정당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나 또한 수많은 사람들을 판단합니다. 그런데 정작 나도 심판을 받는 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두 원로가 자신들의 인생의 종말이 이렇게 끝나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요? 유혹과 유혹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가 유혹 자체가 되어 버린 그들이 혹시 나 자신의 숨겨진 모습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똑같은 심판을 받는 다는 것도 기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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