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을 이겨낸 사람들1-요셉

요셉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에 의해 종으로 팔리게 된 야곱의 아들 요셉은 파라오의 경호대장인 포티파르에게 팔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포티파르는 요셉을 믿고 자기 집 관리인으로 세워, 자기의 모든 재산을 그의 손에 맡겼습니다. 요셉이 포티파르의 집으로 온 다음부터 그 집에는 주님의 축복이 내려졌습니다.

의롭고 성실하게 살아온 요셉은 포티파르의 눈에 띠게 되고, 집안의 모든 일을 맡게 됩니다. 집안의 모든 일을 관리한다는 것은 집안일은 물론이요 주인이 소유한 토지와 재산 등 모든 것을 관리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게 되면 그렇게 믿음을 받게 되고, 믿음을 받게 되면 또 그렇게 축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길을 보내며 날마다 요셉을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거절하면서 보시다시피 주인께서는 모든 재산을 제 손에 맡기신 채, 제가 있는 한 집안일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으십니다. 9 이 집에서는 그분도 저보다 높지 않으십니다. 마님을 빼고서는 무엇 하나 저에게 금하시는 것이 없습니다. 마님은 주인 어른의 부인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어찌 이런 큰 악을 저지르고 하느님께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무도 없는 날에 그 여자가 요셉의 옷을 붙들고 유혹하였지만 요셉은 자기 옷을 그의 손에 버려둔 채 밖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이렇게 유혹을 이겨냈습니다.(창세39,7-12)

 

그러자 그 여자는 요셉이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둔 채 밖으로 도망치는 것을 보고, 하인들을 불러 말하였습니다. “이것 좀 보아라. 우리를 희롱하라고 주인께서 저 히브리 녀석을 데려다 놓으셨구나. 저자가 나와 함께 자려고 나에게 다가오기에 내가 고함을 질렀지. 저자는 내가 목청을 높여 소리 지르는 것을 듣고, 자기 옷을 내 곁에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쳐 나갔다.”(창세39,14-15)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자기 주인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 옷을 제 곁에 놓아두었다가, 포티파르에게 당신이 데려다 놓으신 저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나에게 다가오지 않겠어요? 그래서 내가 목청을 높여 소리 질렀더니, 자기 옷을 내 곁에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쳤답니다.” (창세39,17-18)하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포티파르는 당신 종이 나에게 이렇게 했어요.” 하는 아내의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주인은 그를 잡아 감옥에 처넣었습니다. 그곳은 임금의 죄수들이 갇혀 있는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요셉은 그곳 감옥에서 살게 되었습니다.(창세39,19-20)

포티파르는 요셉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복이 요셉 덕분임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티파르는 아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요셉을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그래서 화가 치밀어 올랐을 것입니다. 지난 10년 동안 요셉을 데리고 있으면서 그의 인간성을 알았고, 또 신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이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먼저 포티파르에 대한 신의와 하느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포티파르는 요셉을 믿고 모든 것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망설임 없이 여주인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요셉이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죄가 결국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적 죄악은 하느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배반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엄청난 짓을 제가 어떻게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하느님께 죄가 됩니다.”하고 말한 것입니다.

 

악마는 나를 유혹할 때 하느님을 미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한다면 감히 죄를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죄 중에서 특별히 성적 죄악은 고통스러울 때보다는 축복 중에 있을 때, 역경보다는 순조로울 때 더 많이 생깁니다. 그것은 우리가 배부르고 안락할 때 하느님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고통과 역경 중에 있을 때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하느님을 찾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마음의 긴장이 풀립니다. 긴장이 풀리게 되면 게을러지고 게으름은 쉽게 성적 유혹에 자리를 내어주게 됩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바로 그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다가 마침내 홍수에 휩쓸려 모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 사람들이 탐욕스럽고, 간음하고, 도둑질하고, 살인을 했기 때문에 멸망한 것이 아니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갈 때까지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평범한 삶을 살았기에, 즉 하느님을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았기에 벌을 받은 것이다. 내 삶 안에서 하느님을 잊고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는데, 아름다운 여인, 그것도 권세를 지니고 있는 여인의 끈질긴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요셉이 열일곱에 노예로 팔려 와서 근 10년을 포티파르의 집에서 일했으니 스물일곱의 청년에게는 참기 힘든 유혹이었을 것입니다. 미끼는 아름답습니다. 미끼는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서 아름답습니다. 물고기 입장에서 본다면 지렁이만큼 유혹적인 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지렁이 속에 날카로운 바늘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당한 그 꿈을 기억했을 것이다. 그 꿈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자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기억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자각하는 것이 유혹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내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아니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이 어디에서 온 사람인지를 깨닫게 되면 나는 저절로 관대해집니다. 그리고 작은 유혹들에 무심해 집니다. 그리고 주님께로 나아가게 될 것임을 알게 되면 즐거워하면서 너그러워지고 더욱 품위있어 집니다. 그렇게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요셉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알아야 할 차례이고, 요셉처럼 그렇게 의롭게 살아야 할 차례입니다.

 

만일 포티파르가 요셉이 자신의 아내를 폭행하려 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죽여 버렸을 것입니다. 절대권력을 가진 경호대장이 종 하나 죽이지 못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냥 감옥에 가둬 둘 뿐입니다. 아마도 포티파르는 요셉을 알았을 것입니다.

 

감옥에서 요셉은 후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포티파르의 아내가 하자고 하는 대로 했으면 적어도 감옥에는 안 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감옥에는 안 왔을지 몰라도 더 큰 불행이 요셉에게 닥쳤을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갔기에 파라오의 시종장들을 만날 수 있었고, 마침내 이집트의 재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눈 앞에 보는 것을 움켜잡으면 사울처럼 그렇게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로움과 신의를 움켜잡았기에 이집트의 재상도 될 수 있었고, 가족도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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