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를 짊어지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형은 대역죄인이나 노예, 반란자등에게 내린 극형이었습니다. 채찍질은 동물의 뼈나 쇳조각 등이 부착된 가죽 끈이나 쇠사슬로 만들어진 것으로써 사형 언도를 받은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어 십자가의 고통을 훨씬 더 크게 만들어 못 견디게 하기 위해 가해졌습니다. 빌라도는 군중을 만족시키려고 바라빠를 풀어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습니다. 반란자는 풀려나고 무죄하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되십니다.
1.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시몬
채찍질을 당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멀고 험하기만 합니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고, 지칠 대로 지치신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무참히 넘어지십니다. 로마병사들은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만듭니다. 로마군인들은 식민지 유다인들에게 짐을 지우고 강제로 노역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을 예고하셨는지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마태5,41)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을 가르치실 때 분명 키레네 사람 시몬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시몬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알고, 그 십자가가 어떤 십자가인지 알았더라면 기쁘게 십자가를 졌을 것입니다.
2.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
병사들은 쓸개즙을 탄 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라고 건넸지만 예수님께서는 맛을 보시고서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조롱하고 모욕한 이들이 건넨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는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한 번 더 조롱하기 위한 것입니다.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가 예수님의 고통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더욱 모욕하는 것입니다. 먹지도 못할 음료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런 음료를 통하여 고통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려는 마음이 있으셨다면 인류구원을 위한 고통을 굳이 받아들이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옷을 두고 제비를 뽑는 군인들
군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진 다음, 거기에 앉아 예수님을 지켰습니다. 가시가 박혀도 아픈데 손과 발에 못이 박히면 얼마나 아프실까요? 얼마나 고통스러운 죽음일까요? 그런데 병사들은 예수님의 옷을 놓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사형수의 옷들은 형을 집행한 병사들의 부수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시편에 미리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시편 22,19)
예수님의 죄명 패에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 예수다”(마태27,37)라고 써 놓았습니다.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님(INRI). 사실 로마군인들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는 말을 통해서 예수님을 정치적인 폭도로 규정하고, 허수아비 왕으로 놀렸지만 이들의 놀림을 통해서 예수님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4. 최후의 유혹
이제 예수님께 최후의 유혹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유혹을 물리치셨는데 마지막 유혹이 남아 있습니다. 지나가던 자들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예수님을 모독하면서 말하였습니다.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는 자야,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마태27,4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생각이 있으셨다면 굳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유혹입니다. 유혹은 절실함 속에 다가옵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라는 유혹만큼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도 없습니다. 이제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과 함께 조롱하며 말하였습니다.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 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마태27,42-4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라는 유혹을 물리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5. 숨을 거두시다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 희생제물이 되시어 하느님께 화해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태27,46)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짖는 기도는 절망의 절규가 아니라 하느님께 올리는 비통의 부르짖음으로 예수님의 고통을 비통하게 드러내는 외침이며 기도입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큰 희생제사를 통하여 세상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계약을 맺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렇게 당신의 희생제사를 완수하셨습니다. 그렇게 닫힌 하늘의 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습니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습니다.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다음,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이들에게 나타났습니다.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는 것은 더 이상 성전과 사제들의 직무가 이 같은 방식으로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제들의 사제직은 아무 소용이 없는 사제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사용되는 성전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전 휘장은 거룩함과 속된 것을 가로막아 거룩함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통하여 성전 휘장이 두 갈래로 찢어졌기에 가로막은 것이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 휘장은 죄 많은 인간이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께 나아갈 수 없음을 상기시켜 왔습니다. 그러나 그 휘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통하여 찢어짐으로써 모든 이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도록 해 주셨기에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녀들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주님을 믿는 이들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이제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6. 무덤에 묻히신 예수님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이 지진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태27,54)
저녁때가 되자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으로서 요셉이라는 이가 왔는데,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자, 빌라도가 내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요셉은 시신을 받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싼 다음,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시고 나서,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습니다. 거기 무덤 맞은쪽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금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안식일이 끝나면 예수님께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해 무덤을 찾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