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

하느님 아버지와 예수님은 하나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요한14,7)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만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내신 분도 믿는 것이고, 예수님을 보는 사람은 예수님을 보내신 분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알고 있다면 하느님을 알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을 믿고 있다면 하느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뵈면, 하느님 아버지를 뵌 것이 됩니다.

 

정말 멋진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볼 때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저 사람의 부모님은 누구일까? 어떻게 자녀를 저렇게 아름답게 성장시켰을까?” 자녀를 보면 그 안에서 부모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예수님을 믿고 또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아버지의 모습도 알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벌써 아버지를 보았다고 확신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필립보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요한14,8)라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에 이런 청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직 주님께서 누구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필립보는 모세(탈출33,18)가 하느님께 청했던 것을 청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당신의 존엄하신 모습을 보여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자 야훼 하느님께서는 나의 얼굴만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나서 사는 사람이 없다모세에게 허용된 가장 큰 권한은 하느님의 뒷모습만을 보는 것이었습니다(탈출 33,18-23). 하지만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으니, 예수님을 바라보면 결국 하느님 아버지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나도 마찬가지 입니다. 형제자매들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모습 안에서 하느님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니, 형제자매들을 시기 질투하거나 미워하고, 더 나아가 분열시키기 까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 안에 계신 하느님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필립보의 청은 아직도 예수님의 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필립보가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온전히 예수님께서 누구신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요한14,9)라고 말씀하십니다.

 

볼 눈이 없으면 눈앞에 있는 귀한 것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하면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을 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을 보고자 하는 자세입니다. 그래야 참된 것을 볼 수 있고, 주님의 사랑과 자비와 전능하심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요한14,10)

아버지 안에 있다는 말씀의 의미는, 예수님의 모든 것은 아버지 하느님 안에 있고, 아버지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모든 것은 아버지 하느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말씀과 행적들, 기적들이 모두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밤을 새워서 기도하시며,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없다면 결코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없고, 신앙이 없다면 결코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본다면 예수님의 모든 일은 결국 하느님의 일이고,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이르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필립보를 비롯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비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확고하게 믿고 있었지만, 그 믿음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활과 승천, 성령강림을 체험하면 그때야 비로소, “아하~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시구나~”“그래서 예수님을 보면 하느님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구나~”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믿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요한14,11)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요한14,11) 그러므로 가장 쉬운 것은 믿는 것입니다. 증거가 너무나도 많이 있는데, 못 믿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히려 믿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작품을 보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겠거든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면 됩니다. 그런데 필립보의 모습은 지금의 나의 모습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못 믿겠거든 열심히 신앙생활 하고 이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서라도 믿읍시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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