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령에 관한 교의사,3. 성령에 관한 신학

 

2. 성령에 관한 교의사

초대 교회의 신경에도 분명히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구별되는 위격으로 고백하고 있는데, 이 신앙교리를 신학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많은 세월이 필요하였습니다. 성경은 아무런 기술적인 설명도 없이 성부 · 성자 · 성령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세 위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 신학의 주요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성(神性)을 성경에 의하여 인정하면서도 성부를 최고의 자립신(自立神), 성자를 그 다음의 신, 성령을 제 3의 신으로 해석하여 자칫하면 삼신론(三神論)이 되기도 하고, 또는 일신론을 지키느라고 성자와 성령의 종속론(從屬論, subordinatianism)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1차 니체아 공의회(325)는 단순히 \”성령을 믿는다.\”고 결의했으나,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에서는 니체아 신경에 \”또한 주님이시며 성명을 주는 성령, 성부께로부터 유출하시며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같은 흠숭과 같은 영광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성령\”을 믿는다고 결의하여 성령의 신성과 그 위격과 성부 · 성자와의 관계를 규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결의를 해석하는데, 동방교회는 성령이 성부에게서 성자를 통하여 유출하신다고 이해하였고, 서방교회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유출하신다고 이해하였으며, 이렇게 해석했기 때문에 675년에 브라가 회의에서 콘스탄티노플 신경에 \’와 성자에게서\'(Filioque)를 삽입했고, 뒤에 로마에서도 이 삽입을 허용했기 때문에, 동방교회는 서방교회가 일반적으로 신조(信條)를 변경하였다고 공박하였고, 오늘까지 양 교회간에 분쟁거리로 남아있습니다. 또 한 가지 쟁점은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성령의 고유한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동방신학은 인간의 구원사업은 오늘의 교회에 있어서 배타적으로 성령의 작용이라고 보는데 반하여, 서방신학은 삼위일체의 작용이지만 주로 성령에게로 돌리고 있다(appropriatio). 아우구스티노는 성령과 교회와의 관계에 대하여 성령을 교회의 혼이라 하였습니다. \”영혼이 육신의 각 지체에 생명과 기능을 부여한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성령의 관계는 육체에 대한 영혼의 관계와 같다. 그런데 육체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에 영혼이 없음과 같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에게 성령은 계시지 않는다.\”(설교 2674: RJn. 1523 참조). 그 후부터 성령이 교회의 혼이라는 교설은 확고한 전통이 되었고 중세기 신학자들도 그대로 답습하였습니다.

 

3. 성령에 관한 신학

서방신학에서는 성령이 성부와 성자와의 사랑이시며 성삼의 일치의 매듭이요, 따라서 하느님과 인간의 결합의 원리로 봅니다.

성령은 초자연생명의 원리이시다

성령은 성삼의 신비 안에서 성부와 성자를 일치시키는 사랑이시요 성령 안에서 성부는 성자께 향하시고 성자는 성령 안에서 성부께 일치하십니다. 모든 전례 기도문의 결문에서 성자는 성부와 함께 성령과의 일치 안에서 영원히 살아 계시고 다스리신다고 찬양하는 것은 바로 성삼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종합한 것입니다.

 

교회의 전통은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의 성령의 위치를 교회의 혼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육체가 영혼에 의하여 살아 있듯이 교회도 성령에 의하여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헌장은 동일한 성령이 교회의 머리(그리스도)와 그 지체에 계시어 몸 전체를 생활케 하시고 통일하시고 움직이신다. 그래서 교부들은 성령이 하시는 일을 생명의 원리 즉 영혼이 육체 안에서 하는 일과 비교할 수 있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교회헌장 7).

 

성령은 교회를 성화하신다.

거룩함 자체이신 성령께서 교회를 이끌고 보호하시며 교회와 함께 하시면 교회는 성령의 거처가 되어 거룩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나 또한 거룩한 성령의 처소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이 기본 삼덕(三德)을 완성하는 데 유익한 도움을 특히 견진성사를 통하여 주신다. 그 여러 가지 도움을 교의신학은 이렇게 분류한다. 인간의 지성에 관계가 깊은 슬기(sapientia), 통달(intellectus), 의견(consilium), 지식(scientia)의 선물과, 인간의 의지에 관계가 깊은 굳셈(fortitudo), 효경(pietas), 두려움(timor)의 선물로 성령의 칠은(七恩)이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모든 은사를 이 7가지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은총을 넘치도록 베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은 신자 개인을 성화시킬 뿐 아니라 복음선포를 위하여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도록 이끄셨습니다.

 

성령은 교회를 형성하신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세우셨고, 성령께서는 교회를 붙들어 보호하십니다. 성령께서 교회 안에 항상 계심으로써 교회는 신앙의 유산을 간직하고 실천하며 모든 믿는 이들을 하나의 백성으로 일치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진리의 성령께서는 교회가 구원의 진리를 믿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나 그것을 선포하는 데 있어서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이끄십니다.

 

교회헌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은 성사와 교직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인도하시며 여러 가지 덕행으로 꾸며주실 뿐 아니라 또한 당신의 은혜를 당신 의향대로 각자에게 나누어주시며(1코린 12,12), 모든 계층의 신도들에게 은사도 나누어주심으로써 교회의 쇄신과 보다 폭넓은 건설을 위하여 유익한 여러 가지 활동과 직무를 맡기에 적합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킨다.”(교회헌장 12). 이렇게 성령께서는 오늘도 그리스도의 교회를 만들고 계십니다.

 

교회가 시대나 환경에 따라서 필요한 제도나 운동을 신설하거나 변경하거나 폐지하는 모든 사목활동에 성령께서는 항상 함께 하시어 보호하십니다. 따라서 오늘의 교회에도 성령의 다양한 카리스마가 내리고 있으니, 각자는 자기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전체 교회에 봉사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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