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예수님의 온유와 겸손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 무식하고 단순한 사람들, 병들고 탄식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은 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오려고 하는 사람들이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져 보려고 항상 그분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찾아 나서셨으며, 냉대 받는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들 모두를 당신께로 부르시며, 그들을 편히 쉬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하십니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들처럼 흩어져 있고 지쳐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며 멍에를 메고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율법학자들이 부여한 짐과 멍에

율법학자들은 농부가 가축에게 짐을 지우듯이 율법의 규정이라는 힘들고 괴로운 멍에를 백성들에게 지워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짐과 멍에는 억눌리고 고된 그들의 생활의 짐이며, 특히 율법의 해석으로 인해 생겨난 지키기 힘든 규정들입니다. 이 규정들은 율법학자들도 온전히 지키기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규정들을 지키지 않으면 율법도 모르는 저주받은 족속으로 매도하였습니다.

 

쉬게 한다.”는 것은 노동을 쉬게 하고 힘을 다시 돌이켜 준다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수고와 무거운 짐을 벗게 해 주실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이 지향하는 것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임을 단순하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대로 남에게 해 주는 것이 율법의 근본 정신임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멍에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보다도 더 완벽하게 율법을 가르치셨고, 그것을 지키도록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처럼 규정만을 강조하거나 형식적이지 않으셨습니다. 그 모든 가르침의 시작은 사랑이고, 그 끝도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힘겨운 멍에가 아닙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마태11,29)

 

온유는 폭력을 어루만지고, 겸손은 오만과 교만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온유와 겸손에서 벗어나면 예수님의 멍에와 짐은 그 무엇보다도 무거워집니다. 왜냐하면 폭력과 교만은 짝을 이루어 오만한 삶을 끌어당기기에 온유와 겸손은 감당하기 힘든 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유와 겸손 안에서 살아가게 되면 예수님의 멍에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 사랑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기꺼이 주님께서 주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배워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어깨를 무겁게 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기에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 용서하는 것, 내어 주는 것, 자비를 베푸는 것…, 이 모든 것은 온유와 겸손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인들이 기꺼이 짊어져야 하는 멍에입니다. 또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내가 짊어질 수 없는 것은 절대로 맡기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배우며, 주님께서 주신 멍에를 기쁘게 짊어질 수 있는 내가 되어 봅시다.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며,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연습해 봅시다.

 

또한 멍에를 메고란 말은 제자가 되라는 뜻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내 놓으셨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나도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하신 것을 배워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인간이 되셨고, 당신 스스로를 낮추시어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의 뜻만을 생각합시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겸손하게 나를 낮추어 봅시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그렇게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삶을 살아가 봅시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내어줌의 삶을 살아가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11,30)

 

어떤 사람에게는 기쁨이 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배운 이들은 기쁨이 되지만, 예수님께로부터 마음이 떠난 이들에게는 무거운 짐이 됩니다. 어떤 때는 예수님의 가벼운 멍에와 짐이 그 무엇보다도 무겁고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참된 자유와 평화와 안식을 누릴 때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힘이 솟아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기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합니다. 그것은 일이 아니라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내 시간과 열정을 내 놓고도 기뻐합니다. 자신의 것을 계산하지 않고, 주고도 아까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기뻐합니다. 해야 할 것을 기쁘게 하고, 신앙생활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습니다. 겨우 주일 한번 간신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그 가벼운 짐도 지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번 하고는 오래도록 생색을 내는 사람들도 참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신앙의 맛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일이 아니라 기쁨이라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늘 마음을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받아들이기만 하면 매력적인 삶과 상급이 나를 더욱 기쁘게 만들어 줍니다신앙생활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임을 언제나 기억합시다. 신앙 생활안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는 내가 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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