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종의 모습을 기억해야 하는 우리들
임금의 무한한 자비를 입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은 종은 이제 벌을 받게 됩니다. 그 벌은 바로 자신이 갚아야 할 빚을 다 갚는 것입니다.
“나서 화가 난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마태18,34)
임금의 자비로 말미암아 얻었던 것을 자신의 무자비를 통해 잃고, 이제 그가 자신의 동료에게 한 것처럼 그렇게 똑같이 심판을 받습니다. 그는 “빚을 다 갚을 때까지” 형리에게 넘겨집니다. 사실 그는 갚을 능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언제까지나 그렇게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은총과 자비를 받았지만 아주 작은 것에 욕심을 내고, 동료의 간절한 청원을 외면하였기에 결국 영원한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나눠주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내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나는 주님께 자비를 청하고 살아가고 있고, 주님의 넘치는 자비를 입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내가 무자비한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면 결국 나는 “영원히 빚을 갚는 곳”(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한히 용서하시고, 무한히 자비로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몇 번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이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자비한 종의 최후를 말씀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태18,35)
끝없는 용서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 또한 용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다짐해야 합니다. 내가 “마음으로부터 용서”를 베풀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 나라에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형제를 용서한다면 하느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실 것입니다. 물론 쉬운 것은 아닙니다. 참된 용서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에 예수님께서 직접 모범을 보이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자비한 종의 최후를 바라보면서 참된 용서를 하는 내가 되어, 주님께서 베푸시는 자비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내가 늘 용서받고 있는 사람임을 기억하면서, 단 한 번이라도 참되게 용서를 해 줄 수 있는 내가 되어 봅시다. 그리고 그 용서가 주님의 자비를 받을 수 있는 조건임을 꼭 기억합시다.
더 나아가 주님께 용서를 청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많은 잘못을 합니다. 내가 참된 용서를 청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어떻게 용서를 청하고 있습니까? 백만 탈렌트를 빚졌음에도 불구하고 잊고 살아가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