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원시장 베드로
원시장 베드로는 충청도 홍주(洪州)의 응정리(應井里)라는 고을에서 부유한 양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렸을 때 행적과 집안 내력에 대한 기록은 자세히 나타나 있지 않지만 평소에 그의 성격이 사납고 야성적이어서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고 한 사실은 그가 천주교 신앙을 알기 이전에 어떠한 생활을 하였는가를 어느 정도 암시하여 줍니다.
전통적인 풍속대로 세속생활을 영위하던 베드로는 나이 55세가 되었을 무렵에 비로소 천주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즉시 입교하였으나 교리의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으므로 좀 더 그것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열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하루는 집안 식구들에게 나는 50년 이상을 무익하게 살아 왔다. 내가 돌아오면 내가 떠난 까닭을 알게 될 것이다. 아무 걱정들 말고 또한 나를 기다리지도 마라로 말한 다음 즉시 집을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1년 이상이나 아무런 소식도 그에게서 들을 수 없었던 가족들은 하루하루를 궁금하게 여기며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베드로가 다시 나타나자 그의 가족과 친지들은 그에게 달려가 여러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는 웃으면서 50여 년 동안 나는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소. 그러나 지금은 수 천 년 동안 목숨을 보전하게 해 주는 약을 가지고 있오. 그것을 내일 설명해 주리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튿날이 되자 베드로는 모든 친척들을 모아 놓고 이 세상의 창시와 종말,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느님의 존재, 원죄(原罪), 강생(降生), 하느님의 계명, 천당과 지옥 등 그가 천주교에 대하여 아는 것을 모두 그들에게 설명하여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것이 착한 뜻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가 영원히 사는 방법이오. 여러분은 모두 내 말을 마지막 유언처럼 여기고 천주교를 신봉하시오라고 덧붙여 말하였습니다. 그의 열성적인 권고는 곧 주님의 은총과 함께 듣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이에 모든 가족들이 그 날부터 만물의 임금이시며 공동의 아버지이신 분을 섬기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에게 회개하도록 하는 힘을 준 것은 모든 말보다도 베드로의 “착한 모범”이었고 그가 지니게 된 신앙의 참된 표현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집에 돌아왔을 때 이미 자기의 급한 성격을 완전히 고쳐 정복하여 일상생활의 여러 기회에 변하지 않는 온화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자기 재산을 나누어 주어 그들을 구하고 자기의 지식으로 외교인들을 권고하는 열성에 사람들은 감탄하였습니다. 그는 외교인들 중의 30가구 이상을 입교시켰으며, 열심이 대단하여 외교인들 앞에서 까지도 항상 천주교의 규칙을 공공연하게 지켰습니다.
입교한 지 2년쯤 뒤에 베드로의 집안 전체가 천주교인이 되었다는 소문이 관장의 귀에 까지 들어갔습니다. 이 때 훗날 순교하게 된 베드로의 사촌형인 원 야고보가 열성적인 신자로 특히 눈에 띄게 되었는데, 관장은 그를 잡아오라고 포졸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야고보가 어디로 갔는가를 물었습니다. 그는 야고보의 숨은 장소가 어딘지 모른다고만 대답하였습니다. 이에 포졸들은 우리는 관장의 명령을 받고 그를 천주교인이라고 잡으러 왔소. 그러나 그가 여기 없으니 같은 천주교인인 당신을 잡아 가겠소라고 말하였고, 이렇게 되어 베드로는 관아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관원은 우선 그에게 야고보가 간 곳을 대라고 하고, 그 자신도 천주교인인가를 확인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은 천주교를 신봉한다고 말하자, 관원은 다시는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천주를 배반하시오. 나는 관장에게 그 모든 소문이 순전히 거짓이었다고 보고 하겠소. 그러면 당신은 곧 풀려날 것이오.라고 유혹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배교할 수 없다고 말하여 어떤 방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여러 날 동안 계속 배교하라는 독촉을 받았지만 베드로는 언제나 거절하였으며, 이에 화가 난 관원은 그를 관장에게 보냈습니다.
관장은 그가 천주교인임을 확인한 다음, 천주를 배반하고 동료들을 고발하고 다시는 천주교를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라. 그러면 너를 즉시 놓아 주마하여 또 다시 배교를 강요하였습니다. 천주를 배반하다니, 절대로 안 됩니다. 저는 또 다른 천주 교우들을 밀고할 수도 없습니다.너는 동료들을 고발하고 네 집에 있는 책들을 신고하기도 원치 않는단 말이냐?저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이렇게 그가 강력하게 배교와 밀고를 거부하자, 관장은 성이 잔뜩 나서 그에게 주뢰형(周牢刑)을 가하게 하고 치도곤(治盜棍) 70대를 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모든 것을 참을성 있게 견디면서 하느님과 부모님께 대한 사람의 본분과 외교인들이 믿는 미신의 헛됨 등에 대한 참된 도리를 설명하였습니다.
다시 옥에 갇힌 그는 이튿날 또 다시 출두하여 같은 질문을 받았지만 자신의 신앙심이 흔들리는 말은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리를 틀리고 그 전날보다도 더 혹독하게 치도곤을 맞았습니다. 살점은 너덜거리고 두 어깨뼈가 부러지고 등뼈는 으스러져 허옇게 드러났습니다. 이렇게 참혹한 상태로 그는 다시 옥으로 끌려갔으나, 상처로 인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만족과 기쁨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옥졸과 포졸들에게 전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원시장은 아직까지 영세를 받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며칠 후에 한 교우가 그를 찾아 왔을 때, 예비신자였던 그는 그 교우에게서 비로소 정식으로 영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관장은 감사에게 보고를 하여 감사로부터 베드로를 장살(杖殺)로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세 번째 신문에서는 그에게 겁을 주기 위하여 여러 형구(刑具)를 준비해 놓은 다음, 주위에는 수많은 포졸들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관장은 그에게 네 마음을 좋은 길로 돌아오게 하여 네 목숨을 구해 주려는 마음에서 나는 모든 방법을 썼다. 그러나 네가 아무 말도 듣지 아니하고 죽기를 고집스럽게 원하므로 감사에게 보고를 하였더니 너를 장살에 처하라는 명령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너는 죽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진리를 위하여 죽는 것이 가장 바라고 있던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그의 결박은 더 세게 조여지고 무서운 고문도 가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형벌이 하루 종일 계속되었지만 베드로는 그것을 용감하게 견디었습니다. 결국 그의 몸은 하도 으스러져서 손발을 쓸 수가 없게 되었으며, 이에 사람들은 그를 감옥으로 떼 메어 가야만 하였고, 그가 스스로 먹을 수 없게 된 음식을 입에 넣어 주어야만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사와 수령은 베드로의 마음을 돌이켜 보려고 하여 그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는 자녀들 이야기를 그에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것은 제 마음을 크게 움직입니다. 하지만 천주께서 친히 저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목소리에 대답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면서 순교의 의지를 나타냈습니다. 그러자 형리(刑吏)들은 사형수에게 관례로 주는 음식을 주고 나서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죽이려고 더욱 미친 듯이 치기 시작하였지만, 그는 쉽사리 죽지 않았습니다. 관장과 포졸과 형리들은 기진맥진하여 이 죄인은 매 맞는 것을 느끼지 못하니 끝장을 낼 방법이 없겠다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자 베드로는, 저는 매 맞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천주께서 여기 계셔서 저를 굳세게 해 주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관장은 저놈은 틀림없이 귀신을 부리는 놈이다라고 외치면서 더 세게 매질을 하도록 하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장살로 베드로를 죽이려던 것을 단념하고, 그를 결박하여 물을 부은 다음 추운 밤중에 밖에 내놓아 얼려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온 몸에 얼음이 뒤덮인 가운데서도 그는 오직 주님의 수난만을 생각하였습니다. 나를 위하여 온 몸에 매를 맞으시고 내 구원을 위하여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 당신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내 몸이 얼음에 덮여 있는 것을 보십시오.라고 하면서 그는 끊임없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의 몸은 새벽녘에 마지막 숨을 거두니, 때는 1793년 1월(陰, 1792년 12월 17일)로 이 때 나이는 61세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