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
‘묵주기도’(黙珠祈禱)를 지칭하는 말인 ‘로사리오’(Rosario)는 원래 ‘동정 마리아의 장미꽃다발’(Rosarium Virginis Mariae)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묵주알을 세면서 바치는 기도라는 뜻에서 ‘묵주기도’로 불리고 있습니다. 서양에서 ‘장미 꽃다발’ 혹은 ‘장미 꽃밭’(라틴어 Rosarium; 이탈리아어 Rosario)라고 불리던 이 기도가 중국과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매괴신공’(玫瑰神功)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런 까닭에 신자들이 로사리오 기도를 바친다는 것은 장미꽃들로 엮은 기도의 화관을 성모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 드린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묵주기도의 기원은 초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이교인들은 자기 자신을 신(神)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머리에 장미꽃으로 역은 관을 쓰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전해져 신자들은 기도 대신 장미꽃을 봉헌하곤 했습니다. 특히 박해 당시 신자들은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에 끌려가 사자의 먹이가 될 때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썼는데 이것은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데 합당한 예모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박해를 피한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면서 순교자들이 썼던 장미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 가지씩 바쳤다고 합니다.
한편,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隱修者)나 독수자(獨修者)들은 죽은 이들을 위해 날마다 시편을 각각 50편(篇)이나 100편(篇) 또는 150편(篇)씩 외우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머리에 쓰는 관처럼 둥글게 엮어 하나씩 굴리면서 기도의 횟수를 세었는데, 이렇게 고안해 낸 묵주는 기도하는 사람을 분심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고 전심으로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오늘날 묵주기도가 활발히 보급되기까지 ‘도미니꼬 수도회’가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남(南)프랑스에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성 도미니코가 이단자들을 근절시키기 위해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던 중, “로사리오에 대한 신심을 퍼지게 하라. 그 (신심) 행위로 많은 죄인들이 회개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성모 마리아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에 성 도미니꼬는 성모 마리아께 대한 깊은 신심을 가지고 신자들과 함께 열렬히 기도하며 설교하였고, 그 결과 이단 세력이 점차 축소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와 ‘성모의 종 수도회’는 성모님의 다섯 가지 고통에 대한 신심과 성모 칠고(七苦)와 칠락(七樂) 신심을 널리 전파하여 오늘날의 ‘칠락 묵주의 기도’라고 전해지는 ‘프란치스코 묵주기도’를 만들어 보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이 일반적인 형태의 묵주기도는 15세기 후반에 생겨났습니다. 도미니코 수도회의 ‘알랑 드 라 로슈’ 수사는 1470년, ‘매괴회’(玫瑰會)라는 신심 단체를 만들어 묵주기도를 열심히 보급하였습니다. 그는 묵주기도의 주제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를 강생, 수난, 부활에 따라 환희, 고통, 영광의 신비로 나누었고, 이 기도는 더욱 널리 퍼져 나갔고, 15세기 말에 이르러 전통적인 신비 15단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고 돌아가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 빛의 신비가 추가되면서 20단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