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렌트의 비유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맞는 탈렌트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탈렌트를 잘 활용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길 원하십니다. 그 탈렌트를 우리는 재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각자에게는 탈렌트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 탈렌트를 잘 활용하고, 어떤 이는 그 탈렌트를 전혀 활용하지 않고, 원망과 좌절의 삶을 살기도 합니다.
탈렌트의 비유에서 주인은 각자에게 능력에 따라 돈을 맡겼습니다. 주인은 각자의 능력을 알고 있기에 그에게 알맞은 탈렌트를 맡겼습니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맡기는 것입니다. 은총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주시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은총은 베풀지 않으십니다. 다다익선이 아니라 과한 것은 나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받은 사람들의 태도는 각각 다릅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두 탈렌트를 받은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이들은 부지런히 노력하여 두 배로 늘린 것입니다.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그는 게으른 종인 것 같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돈을 감출 때, 흔히 땅에 묻었다고 합니다. 은행이라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신용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마당을 파 보면 묻혀 있는 돈이나 금덩이가 나오지 않을까요?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왜 그랬을까요? 다른 사람들의 탈렌트가 더 많아서 화가 나서 그랬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자신에게 한 탈렌트를 맡겼습니다. 한 탈렌트는 6000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입니다. 그러니 하루 품삯을 50,000원이라고 한다면 3억정도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억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탈란트를 보고 자신은 적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의 모습 안에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도 한 탈렌트를 맡기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에게 맡기신 한 탈렌트는 생각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고, 오로지 다른 사람에게 주신 탈렌트들만을 바라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불평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질투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고, 자존감의 결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 만족하면서 살아갈 때, 더 나아가서 감사하면서 살아갈 때 나는 질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탈렌트의 비유를 묵상하면서 내가 받은 탈렌트는 무엇이고, 나는 그 탈렌트를 어떻게 개발하고 있으며, 그 탈렌트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그 탈렌트를 통하여 어떻게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