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맡겨지는 탈렌트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종들에게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아시리아와 이집트의 옛 문헌을 보면 자유민이 종이나 해방 노예에게 재산을 맡기는 예가 많았는데, 그것은 주인의 재산을 활용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맡은 사람은 주인에게 맡은 액수와 일정한 이자를 돌려주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하느님이시고, 종들은 바로 우리들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재산을 맡기셨습니다. 다른 이들과 똑같을 수도 있고, 다른 이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것이 있고, 어느 날엔가는 그것을 셈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 재산은 바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재능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알맞은 재능을 주셨습니다.
주인은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이제 종들은 자신들이 받은 탈렌트를 가지고 이익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종들은 주인으로부터 주인이 맡겨주는 만큼 탈렌트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탈렌트를 활용하였습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이들은 부지런히 노력하여 두 배로 늘린 것입니다.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다른 두 종과는 다르게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마태25,18)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그 돈을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다른 두 동료가 자신보다 더 많이 받은 것에 대한 항의였을지도 모릅니다. 또 게을러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인의 의도가 아닙니다. 주인은 자신의 종들의 능력을 알았고, 종들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탈렌트를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탈렌트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닙니다. 당시 한 탈렌트는 6000데나리온이었고,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탈렌트는 당시 일반 노동자가 6천 일을 노동해야, 적어도 20년을 일해야 벌 수 있는 큰 돈 이었습니다. 주인은 결코 한 탈렌트를 맡긴 종을 가볍게 보지 않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맡기십니다. 은총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주시지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은총은 베풀지 않으십니다. 다다익선이 아니라 과한 것은 나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다가 어떤 경우에는 신비체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두려워서 기도를 못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려워서 기도를 못하게 되는 경우는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감당할 수 있는 것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많은 탈렌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재능들은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다른 이들의 탈렌트를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내 탈렌트만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들의 탈렌트는 무시하기도 합니다. 내가 가진 탈렌트를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이들의 탈렌트를 귀하게 여기는 것도 나의 탈렌트를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꼭 맡는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것에 감사하며 나의 탈렌트를 통하여 주님께 영광드리는 내가 되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