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들과 셈을 하는 주인의 칭찬과 심판

종들과 셈을 하는 주인의 칭찬과 심판

각자에 맞게 탈렌트를 맡긴 주인은 오랜 뒤에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종들과 셈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또 두 탈렌트를 받은 사람은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를 이렇게 칭찬하였습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마태25,21)

 

이 종들은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얼마나 기뻤을까요? 주인은 자신을 믿었고, 자신은 주인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성실한 종을 칭찬하였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칭찬이 어디 있으며, 이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가 작은 일에 충실하면 나 또한 하느님께로부터 이런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한 탈렌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사람은 어떨까요? 분명 시기질투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기질투를 오래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주어질 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마태25,24-25)

한 탈렌트를 받은 종은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합리화시키면서 오히려 그 책임을 주인에게 돌렸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주인을 무자비한 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종의 불평과 불만, 그리고 자신에 대한 비난을 들은 주인은 종의 잘못을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마태25,26-27)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얼마나 두려운 말입니다. 이 말씀을 하느님께로부터 듣게 된다면 나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망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그렇다면 종은 주인으로부터 한 탈렌트를 받았으니까 주인은 종에게 심고 뿌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거두고 모을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종이 그렇게 알고 있었다면 받았으니까 행동으로 옮겨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종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제 주인은 단호하게 판결을 내립니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25,28-29)

결국 그는 가진 것 마저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주인은 또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여기서 가진 자는 바로 자신에게 주어진 탈렌트를 성실하게 관리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맡겨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이는 더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열정을 가지지 못한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입니다. 당연한 결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형식적으로 하는 사람과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 그 열매는 분명 다릅니다. 형식적으로 하는 사람은 기회가 주어지면 쉽게 신앙을 잃어버립니다. 하지만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시련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그 시련을 기회삼아 더욱 큰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누구든지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주인은 심판을 내립니다.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마태25,30)

 

주인의 마음을 모르고, 주인에게 모욕을 주는 종이 주인께 칭찬 받을 리는 없습니다. “바깥 어둠 속에서 울며 이를 갈며그는 후회할 것입니다. 다른 종들이 탈렌트를 불리느라고 고생할 때, 그가 했던 말들, 그가 했던 행동들을…,

이 어리석은 친구들아! 왜들 그렇게 사냐? 쉬엄쉬엄 해. 내가 주인님이 돌아오시면 다 해결해 줄께. 그렇게 열심히 살면 누가 알아 주냐? 또 급한 것이 뭐가 있냐? 내일 해도 돼. 오늘은 좀 즐기자!”

 

이런 생각과 행동이 결국 그를 멸망으로 이끈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하루를 정리하면서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를 자세히 살피고 그 가운데 버릇이 된 죄를 성찰하고 반성하는 것입니다. 내가 안 하는 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멸망으로 끌어 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가해 31-34주일, 연중시기(가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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