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9,7)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9,7)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를 체험하면서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머물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어진 큰 기쁨 속에 머물고자 청할 때,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9,7)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예수님을 통한 구원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어떤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이유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때 힘을 내고, 믿음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 앞에 나타났다는 것은 율법과 예언서의 말씀이 모두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고, 이제 예언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께서 수난을 겪으실 차례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황홀한 순간에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원하시는 것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수난의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게 믿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함께 있어 내가 원하는 것만을 주님께 찾지 말고,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 또한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유혹,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만 머물고 싶은 유혹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하고, 고집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기쁘게 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는 잘 지내고, 그와 함께라면 자신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불편하거나 하기 싫은 일이 생기면 마음을 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기쁘게 하는 것이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에 가는 것이고, 내가 함께 하고 싶은 사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모든 사람과 함께 하려는 마음자세와 노력입니다. 주님과 함께 머물며, 주님과 함께 하고, 주님과 함께 가며, 주님과 함께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 머물고 싶어 했던 제자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9,7)는 말씀을 들었고,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습니다.(마르9,8)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모든 상황이 변했습니다. 그들 곁에는 예수님만 남아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환상이나 꿈을 꾼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들었습니다. 그들 가슴에는 강력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황홀하게 변모하셨던 주님께서 바로 옆에 계십니다.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십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비록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겠지만, 그 기쁨은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누구신지를 보다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막아서도 안 되고, 두려워해서도 안 되며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을 봐서도 안 됩니다. 다른 것들을 볼 때 두려움이 생겨나고, 절망이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위로를 기억하면서 주님께서 가시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결코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언제나 늘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마르9,9)하셨습니다. 물론 말해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의 변모를 얘기 해 준다면 사람들이 잘못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메시아로, 세상을 힘으로 뒤집어엎을 메시아로 잘못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와 다른 사도들은 마음 깊이 이것을 간직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메시아께서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것을 아직 그들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던 것입니다.(마르9,10)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한데 예수님께서는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을 하시니 도대체 이해가 안됐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임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부활 후에 자연스럽게 밝혀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다음에야 비로소 아하! 그 말씀이었는데 내가 못 알아들었구나!”하고 무릎을 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보여 주신 이유는 수난과 죽음 때에 힘을 내라는 것입니다. 굳은 믿음을 간직하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잊어버리게 되면 가지고 있던 믿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오로지 두려움 속에서 떨게 됩니다. 제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나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늘 기억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하며,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어떤 처지에 있든지 감사하며 기도하는 모습으로, 사랑을 베풀며 용서하는 모습으로 형제자매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그렇게 거룩하게 변화되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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