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루살렘 성전
예루살렘 성전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들과 함께 현존하고 계시다는 표징을 나타내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고, 각종 의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성전은 거룩한 곳이며, 인간이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장소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성전에 머무시면서 당신 백성에게 은총과 생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어 희생제사를 드리신 다음부터는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과 교회라는 의미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은 세 차례에 걸친 성전 건축과 파괴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솔로몬 성전
솔로몬 성전은 오늘날 예루살렘의 옛 도시 동쪽에, \”하람 에슈 셰리프)라고 불리는 지역 안에 있었습니다. 비록 그 위치를 자세히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성경 시대의 세 성전, 즉 솔로몬 성전과 즈루빠벨 성전과 헤로데 성전이 같은 자리에 들어서 있던 것으로 여겨지며, 현재 그곳에 서 있는 모스크(Mosque)가 그 자리로 추정됩니다. 엘 아삭 모스크(el Aqsa Mosqu)로 불리는 이 이슬람교 성전은 638년에 완공되었는데, 이 모스크 안에 있는 바위 위가 지성소나 성소 밖의 제단 자리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2역대3,1). 이 바위는 다윗이 은 50세켈(2사무24,24;1역대21,25절에 의하면 금 600세켈)을 주고 아라우나에게서 산 \”타작 마당의 일부분\”이었을 것입니다. 현재 솔로몬 성전 건축물의 어떤 부분도 남아 있지 않은 까닭은 헤로데 성전의 건축 과정에서 그 이전에 건축된 성전의 기초가 파괴되고 다져졌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성전들은 국고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국력의 여하에 따라 성전의 보물로 다른 나라에 조공을 바쳤고, 국력이 강해져서 전쟁에 승리하면 그 전리품으로 성전 창고를 채우고 장식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성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 성전에 모아 두었던 보물들이 이집트의 시삭 왕에 의해 약탈당하였으며(1열왕14,26), 아사 왕은 시리아와 우호 동맹을 맺기 위해 시리아 왕에게 보내는 예물로 성전의 보불을 사용하였습니다(1열왕15,18). 아하즈 왕도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하여 아시리아 왕에게 보내는 예물로 성전의 보물을 사용하였습니다(2열왕16,8). 또 기원전 621년에 요시아 왕은 종교 개혁을 단행하여 성전을 수리하였는데, 이 성전은 결국 기원전 587년에 바빌론의 네부카드네자르(BC605-562)에 의해 파괴되고 약탈되었습니다(2열왕25,9.13-17). 그러나 파괴 이후에도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제사를 드리곤 하였습니다(예레41,5).
2. 즈루빠벨 성전
BC 539년에 바빌론을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BC539-529)는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던 사람들이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537년부터 귀환하기 시작한 포로들은 기원전 587년에 네브카드네자르에게 빼앗겼던 성전 기물을 가지고 돌아와 성전 재건을 시도하였지만(에즈1;3,2-3.8-10) 곧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즈루빠벨과 여호수아 시대, 즉 하까이와 즈카르야가 예언 활동을 하던 시기에(BC520년 경) 다시 공사를 재개하여 BC 515년에 완공하였는데, 이 성전은 약 500년 동안 유지되었습니다. 이 성전의 크기와 세부적인 구조에 대해서는 명백히 알 수 없지만, 길이가 60암마에 높이가 60암마였다고 전해집니다. 성소 둘레에는 창고와 제사장들의 방들이 있었습니다. 이 성전은 솔로몬 성전에 비해 그 규모는 매우 축소된 것이었으나 완공 이후 기원전 63년까지 500년을 존속했었습니다.
마카베오서에는(1마카1,21;4,49-51) 성전 기물에 관한 일련의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계약의 궤는 이미 포로기에 없어졌고, 그 후에 다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이 성전의 성소에는 솔로몬 성전의 10개의 등잔대 대신 일곱 개의 가지를 가진 한 개의 등잔대가 있었고, 제사상과 분향 제단이 있었습니다. 안티오쿠스 4세(BC 175-164)는 BC 167년에 이러한 기물들을 탈취해 간 뒤에 가증스러운 제우스 신상과 제단을 가져다 놓았습니다. BC 164년에는 마카베오가 성전에서 이런 것들을 치워 버린 뒤 성전을 정화하고 제단을 새로 쌓았는데, 이것이 유대인들의 중요한 축제 가운데 하나인 성전 정화를 기념하는 축제 \”하누카\”의 기원입니다.
3. 헤로데 성전
이두메아 출신의 왕 헤로데는 BC 19년에 유대인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본래의 목적은 상당히 정치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헤로데는 이 성전이 성스러운 자리가 되도록 성소를 짓는데 석공으로 참여할 제사장 1천 명을 훈련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주요 구조물은 10년도 안된 기원전 9년경에 다 지어졌지만 공사는 서기 64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70년에 로마 병사들에 의해 이 성전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거의 80년이 넘게 걸려 세워진 이 헤롯성전은 완공된 지 불과 수 년 후인 AD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성전에 있던 금들이 화재로 녹아 돌 사이에 스며들었고, 로마 군인들이 이 금을 찾기 위해 모든 돌을 다 헤쳐버려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헤로데 당시 성전의 바깥 벽 중 일부 약 450m 정도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를 ‘통곡의 벽’(The Wailing Wall)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유대인이 이곳에 와서 성전이 파괴된 것과 나라를 잃은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여 통곡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곳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오스만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곳에 순례 차 와서 소원이 적힌 쪽지를 벽의 돌 틈새에 끼워 가며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