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르
야곱의 아들 유다는 수아라는 이름을 지닌 가나안 사람의 딸을 만나 아내로 삼고, 에르, 오난, 셀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맏아들 에르에게 아내를 얻어주었는데 그 이름은 타마르였습니다. 대추야자나무를 뜻하는 타마르는 여자 이름으로도 성읍 이름으로도 쓰였습니다.
그런데 에르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주님께서 그를 죽게 하셨습니다.(창세38,7) 그래서 유다가 오난에게 타마르를 맞아들여 형에게 자손을 일으켜 주라고 말했지만(수혼제, 시형제 혼인) 오난은 타마르와의 관계에서 아들을 낳아도 그 아들이 형의 아들이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타마르가 임신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이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그도 죽게 하셨습니다.(창세38,9-10)
당시에는 여러 형제가 함께 살다가 그 중의 하나가 아들 없이 죽었을 경우에 그 남은 과부는 일가가 아닌 남과 결혼하지 못했습니다. 시동생이 그를 아내로 맞아 같이 살아서 시동생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난 첫아들은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게 했습니다(참조: 신명25,5-6). 그런데 모세의 이 법은 두 형제가 같은 집에 살고 있을 때에만 적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율법은 가족의 유산을 보존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참조: 신명25,5-10). 그리고 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았습니다.
두 아들이 죽자 유다는 타마르에게 “내 아들 셀라가 클 때까지 너는 친정에 돌아가 과부로 살고 있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유다는 막내 셀라가 제 형들처럼 죽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타마르는 친정으로 돌아가 살게 되었습니다.(창세38,11)
이제 타마르는 자신의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 많은 시간을 살게 됩니다. 그렇게 타마르는 유다에게 잊혀졌습니다. 셀라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불러주지 않자 타마르는 시아버지가 자기 양들의 털을 깎으러 팀나로 올라간다는 말을 전해 듣고는 입고 있던 과부 옷을 벗고 너울을 써서 몸을 가리고 신전 창녀로 변장하여 유다를 유혹하였습니다. 타마르가 얼굴을 너울로 가린 것은 그녀의 얼굴을 시아버지인 유다가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 계획은 성공했고 유다는 타마르를 보고 신전창녀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서 타마르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죽은 남편의 후사를 마련하겠다는 일념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그녀가 자신의 며느리인줄도 모르고 새끼 염소 한 마리를 주기로 하고 그녀와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타마르는 유다에게 담보물을 원하는데 유다의 인장과 줄, 그리고 지팡이를 원했습니다. 계약을 체결할 때 찍는 인장은 손가락에 끼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줄로 매어 목에 거는 것을 가리킵니다. 지팡이에도 그 주인의 특별한 표시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셋은 후에 태어날 아기의 아버지를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이 됩니다.
유다는 친구 편에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보내면서 담보물을 찾아오게 했으나 찾지 못합니다. 그곳에 신전 창녀는 없었던 것입니다. 유다는 “가질테면 가지라지. 우리야 창피만 당하지 않으면 되니까. 보다시피 내가 이 새끼 염소 한 마리를 보냈는데, 자네가 그 여자를 찾지 못한 게 아닌가?”(창세38,23) 그렇게 유다는 신전창녀(타마르)와의 관계를 잊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타마르는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타마르는 계략을 써서 남편에게 아이를 낳아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타마르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대의 며느리 타마르가 창녀 노릇을 했다네. 더군다나 창녀질을 하다 임신까지 했다네.”(창세38,24) 이 말을 전해들은 유다는 분노하여 화형에 처하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화형은 드문 처형방식이기는 하였지만 고대 근동과 성경에서도 그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레위21,9;예레29,22-23).
끌려온 타마르는 자기의 시아버지에게 전갈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 물건 임자의 아이를 배었습니다. 이 인장과 줄과 지팡이가 누구 것인지 살펴보십시오.”(창세38,25) 유다는 그것이 자기 것인지를 알아보고는 “그 애가 나보다 더 옳다! 내가 그 애를 내 아들 셀라에게 아내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창세38,26)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유다 자신보다 타마르가 의롭다는 것입니다. 타마르의 행동이 비록 모든 면에서 완전한 것은 아니었지만 선조의 후손이 끊이지 않도록 유다보다 더 정성과 힘을 쏟았다는 의미에서 유다보다 더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타마르는 페레츠와 제라를 낳게 됩니다. 마태오 복음은 족보에서 그것을 이렇게 알려줍니다.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마태1,3)
타마르! 그녀의 이름의 뜻은 대추야자나무입니다. 대추야자나무는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사막에서는 이 열매가 중요한 식량이고 부(富)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아주 옛날부터 재배해왔으며 귀하게 여겨왔습니다. 유럽의 지중해 연안에서는 이 나무를 관상수로 심고, 그리스도교인들은 주님수난 성지주일에(종려주일)에 이 나무의 잎을 사용했습니다.
타마르는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 있고, 두 남편을 먼저 보내고, 더 나아가 시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쌍둥이 아들을 낳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 역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타마르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죽은 남편의 후사를 마련해 주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불완전한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당신의 역사를 완성해 나아가십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대추야자나무를 뜻했는데, 우연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러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 나뭇가지를 들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호하였습니다. 타마르! 그녀는 그녀의 인생을 개척하였고, 그렇게 구원 역사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