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부활 대축일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온 마음으로 찬미합시다.

우리의 구원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습니다.

우리 주님, 제자들에게 부활을 예고하셨지만 제자들의 귀에는 수난과 죽음만이 들려왔고, 죽었다 살아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기에 믿음조차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 미리 예고하신 대로 삼일만에 부활하셨지만 부활을 기대하며 무덤앞을 지킨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절망한 제자들은 주님의 무덤을 지킬 생각도 하지 못했고,

모든 희망을 접어버린 제자들은 유다인들을 두려워하여 골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주님의 부활은 결코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부활하신 우리 주님을 온 마음으로 찬미합시다. 우리의 구원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했던 마리아 막달레나. 부활에 대한 믿음은 없었지만 주님께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던 마리아 막달레나. 주님께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해 이른 새벽에 예수님께로 갔다가 빈무덤을 발견했습니다. 무덤이 빈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비었지만 그녀는 누가 주님을 옮겨 모신 줄로 마음 조이며 제자들에게 달려갔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20,2)

무덤으로 달려간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을 보고 주님께서 부활하심을 믿었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가슴 뜨거웠던 마리아 막달레나의 기쁨, 빈 무덤을 발견하고 믿게 된 베드로와 요한의 가슴 두근거림. 그 기쁨과 두근거림이 나의 것이 되어 그들과 함께 주님의 부활을 함께 기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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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부활 대축일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빈 무덤을 발견한 마리아 막달레나

    유다인들은 안식일을 엄격히 지켜야 했기에 안식일에는 향료를 살 수도 없었고, 예수님의 무덤까지 걸어올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여인들은 향료를 살 수 있었습니다. 안식일은 해가 지면 끝납니다. 하지만 그때 무덤으로 달려가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마리아 막달레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길을 서두르게 됩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습니다(요한20,1).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한 마리아 막달레나였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즉시 제자들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20,2)

    그런데 그녀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제자들에게 전한 것입니다.

     

  2. 관리자 님의 말:

    무덤으로 달려가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

    마리아 막달레나의 빈 무덤에 대한 소식은 베드로와 요한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에 앞서 세 번이나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예고하셨습니다.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당신 구원 사업을 완수하시는 것이 예수님께서 지니신 메시아의 사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루카9,22)며 당신이 지니신 메시아의 사명을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앞에서 뿔뿔이 흩어진 것을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부활보다는 수난과 죽음이라는 말이 더 와 닿았을 것이고,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는 부활은 생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무덤을 지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깜짝 놀라서 즉시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그들도 무척 궁금했을 것입니다. 무덤으로 달려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부활하셨을까? 그런데 우리 눈 앞에서 그렇게 처절하게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부활하실 수가 있단 말인가? 베드로와 요한은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무덤으로 달려갔을 것입니다.

     

    두 사도가 곧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보다 젊었던 요한이 먼저 무덤에 이르렀습니다. 요한 사도는 막달라 마리아의 증언이 사실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예수님을 쌌던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무덤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요한20,5) 아마도 베드로 사도를 향한 겸손의 표현(장유유서) 때문인 듯 합니다. 요한은 베드로 사도의 권위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위에 교회를 세우시고, 수위권을 주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져 있었습니다. 수의가 그곳에 놓여 있다는 것은 막달라 마리아의 가정(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는)과 모순됩니다. 만일 예수님의 시신이 도적을 맞았다면 수의와 수건도 다 가져 갔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빈 무덤을 보고서야 그들은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회상하고 부활을 믿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를 으뜸으로 세우시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우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믿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그 증거를 보고 베드로 사도는 부활을 믿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아마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한20,9)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비로소 아하! 그랬었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될 것입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누가 말해 준다 해도 못 알아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일이 이렇게 하면 생기니 조심해야 한다고 말해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가 종종 있습니다.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어?”하는 생각이 결국 그런 실수를 하게 만듭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깨달아야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받아들일 수가 있겠지요. 부지런히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실천하고, 그 말씀으로 기도하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옮겨질 차례입니다. 그런데 믿음이라는 것이 한 순간에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서서히 생겨나고, 그리고 그 믿음으로 변화되어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3. 관리자 님의 말:

    빈 무덤이 알려주고 있는 것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은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갔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할 법도 합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혹시 제자들이 사람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숭배하게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했을까요? 그러나 시체나 유물에 대한 숭배는 유대인들에게는 없었던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둘째, 또한 다른 유대인들이 훔쳐갔다고 가정해 봅시다. 빈 무덤을 보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다면 분명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간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비꼬며 반박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럴 줄 알고 예수님의 시체를 옮겨 놨다!”라고. 하지만 지금도 우리가 부활을 믿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가정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셋째, 또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숨겨놓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라고 말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런데 자신들의 거짓말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어 놓을 수 있을까요?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면서 제자들이 당했던 수많은 박해를 당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거짓말을 위해서 사기를 칠 수 있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사기를 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위의 세 가지의 가정들은 모두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덤이 비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에 무덤이 빈 것이지 누가 시체를 훔쳐가서 무덤이 비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리고 사도들도 빈 무덤을 보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것도 아닙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뵙고서야 예수님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근거 없는 허황된 것을 믿으라고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실을 전하는 것뿐입니다. 사실을 증거 하는 것뿐입니다.

     

     

  4. 관리자 님의 말:

    6. 부활 연습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할 수 있고 부활의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아주 위험한 수술을 받게 된 분이 계셨습니다. 그 형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준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물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것을 그 형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형제는 이제 지상에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자신에게 잘해주었던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 불편했던 관계의 사람들…, 이 모든 이들을 생각하면서 하느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애써 잊으려고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언제나 자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그를 위해서는 기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잊어버리고, 그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그를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과는 매우 친한 사이였습니다. 너무도 마음이 잘 맞아서 그에게는 어떠한 것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친했던 그 사람이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그는 아주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혔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흥미로운 이야기에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 형제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소름 끼치는 기억으로 만들어 놓은 그를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두 번 다시 보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가 연락을 해 와도 끊임없이 거부하였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는 아무런 마음의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수술 전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 형제는 병자성사를 청했습니다. 병자성사를 받으면서 그는 모든 것을 본당신부님께 털어 놓았습니다. 본당신부님은 그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마음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일지 모르는 성체를 모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그 형제는 천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천사는 그에게 순금의 십자가와 가시로 엮어진 십자가를 내밀고 선택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형제는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왜 십자가가 다르지요?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어떻게 달라집니까?”

     

    천사는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순금의 십자가는 예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은 주님의 십자가를 잘 짊어지고 주님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선택하는 것이고, 가시로 엮어진 십자가는 주님의 가르치심에 온전히 따르며 어떨 때는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의탁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십자가입니다.”

     

    천사는 또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부활하기를 원하십니까? 부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부활하기를 원하면서도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돌려 주셨는데,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 서도 그들을 용서해 주셨는데 당신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군요. 오늘밤이 당신의 마지막 밤인데 당신은 아직도 오래 오래 살 것처럼 생각하시는군요. 이 가시로 엮어진 십자가를 선택해야 하는데 순금으로 된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계시군요.”

     

    순간 그 형제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면서 자신은 점점 구원에서 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 속에서 살아간 것이 아니라 미움과 분노 속에서 살아가면서 자기 자신은 문제가 없고, 그 사람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고 있었지만 자신은 결코 자비롭지도 않았고, 옹졸하기만 하였던 것입니다.

     

    잠에서 깬 그는 아침이 될 때까지 기도하였습니다. 주님께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전화기를 들어 그 사람에 연락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용서를 청하였습니다. 너무도 옹졸했다고…,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고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는 자신의 변화된 마음을 가족들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당부하였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용서하면서 살거라. 그것이 부활을 미리 맛보며 살아가는 것이란다.”

    주님께서는 그를 부르셨습니다. 너무도 어려운 상황이어서 그 형제는 깨어나지 못하고 하느님께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형제의 육신은 죽었지만, 이제 미움으로 가득 찼던 그 마음을 버리고, 사랑으로 가득 찼기에 은총 속에서 하느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형제는 주님을 자비로우신 심판관으로 만날 충분한 준비를 하고 주님께로 나아간 것입니다.

     

    나는 매순간 부활을 체험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면서, 부족한 내 모습에 대해 용서를 청하면서 늘 새롭게 태어남을 체험합니다. 그러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언제나 나에게 희망이 됩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부활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5. 관리자 님의 말:

    부활 삼종 기도

         부활 삼종기도는 부활 대축일로부터 시작하여 부활시기가 끝나는 성령강림 대축일까지 바치는 기도로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의 부활을 기뻐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기뻐하시는 분은 어머니 마리아이십니다. 그래서 천상모후의 관을 받으신 어머니께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라고 말씀드리며 태중에 모셨던 아드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부활하셨기에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기뻐하면서 어머니 마리아께 전구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 마리아께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으니함께 기뻐하자고 청하는 기도합니다.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알렐루야.

    동정 마리아님,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소서.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온 세상을 기쁘게 하셨으니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영생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부활은 세상 모든 이들의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수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간절히 원하셨던 분은 어머니 마리아이십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는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영혼과 육신의 부활을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부활삼종기도를 바치며 성모님께 나 또한 부활하여 영생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도록 전구해 달라고 청하는 기도입니다. 삼종기도는 꿇어서 바치는 데 주일에는 기쁨을 표시하는 뜻에서 일어서서 바칩니다. 부활 삼종기도는 특별히 기쁨을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항상 일어서서 바칩니다. 교황 베네딕토 14, 레오 13, 비오 11세는 한 달 동안 매일 삼종기도를 바치는 이에게 전대사(全大赦)를 허락하였습니다.

  6. 관리자 님의 말:

    부속가

       

    파스카 희생제물 우리모두 찬미하세.

    그리스도 죄인들을 아버지께 화해시켜

    무죄하신 어린양이 양떼들을 구하셨네

     

    죽음생명 싸움에서 참혹하게 돌아가신

    불사불멸 용사께서 다시살아 다스리네.

     

    마리아! 말하여라. 무엇을 보았는지.

    살아나신 주님무덤! 부활하신 주님영광

    목격자 천사들과 수의염포 난보았네.

     

    그리스도 나의희망 죽음에서 부활했네.

    너희보다 먼저앞서 갈릴래아 가시리라.

    그리스도 부활하심 저희굳게 믿사오니

    승리하신 임금님 자비를 베푸소서.

     

    특별한 축일(祝日) 미사 때 제2독서 후, 즉 복음 전에 노래되거나 외워지는 찬미가를 부속가라고 합니다. 부속가는 로마 가톨릭교회 전례 음악으로, 9세기에 탄생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수도원의 수도자들은 알렐루야의 모음(특히 마지막의 a)에 지정된 무척 긴 선율을 쉽게 기억하려고 습관적으로 가사를 덧붙이곤 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이 본문을 가사로 하는 노래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 노래들은 미사 전례에서 불리게 되었습니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부속가의 위치를 알렐루야 앞으로 변경하였습니다.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 하는 부속가 외에는 자유로이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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