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이웃 사랑

이웃 사랑

나는 내 친구들과 이웃들을 사랑합니다. 그들을 매우 아끼고 좋아하며,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에게 내 사랑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들의 어려움을 함께 해주고, 그들의 기쁨을 내 기쁨처럼 함께 기뻐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조건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내 마음에 들며, 나에게 잘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면, 나를 배려하면…,” 그래서 그들로부터 상처를 조금 받게 되면 외면하기도 하고, 돌아서기도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당신 제자들을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사랑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바로 예수님처럼 그런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서운하다 할지라도 이해하면서, 용서하면서, 처음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좋을 때만 좋은 친구로 남아 있지 않고, 안 좋은 일이 있다 할지라도 함께 하고, 또 함께 해 주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다 할지라도 그의 생각을 존중해주며 그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내가 사랑했고, 좋아했고, 함께 했던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내가 내 틀에 그를 맞추려고 하다 보니 그의 부족한 모습이 보이고, 나와 다른 것이 보이고, 내가 손해를 봤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웃사랑은 조건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가 나에게 잘 해 주었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내 앞에 있기 때문에 그에게 잘 해 주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가 특별한 능력이나 재력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귀한 자녀이기에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이들은 시기와 판단과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과 이해와 배려와 나눔과 용서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앙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원한을 품고 서로 미워하거나 그렇게 미워하는 사이를 말합니다. 앙숙이 되는 이유는 말 그대로 원망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원망을 품고 머물게 되면 그 원망은 미움과 분노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해질 때 까지 성난 체로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난 상태로 잠을 자게 되는 것이 앙숙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보통 우리는 개와 고양이가 앙숙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고양이는 반가우면 꼬리를 접고, 개는 반가우면 꼬리를 흔듭니다. 고양이는 화가 나면 꼬리를 세우고, 개는 무서우면 꼬리를 내립니다.

앙숙이 되는 이유는 내 틀에 상대방을 맞추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고, 이해하고 배려하기 보다는 판단하고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이웃을 좋아하고 아끼기 위해서는 이해하려 해야 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해야 합니다. 내 이웃을 소중히 여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늘 명심하며 너그럽고 자비를 베푸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상대방의 허물을 바라보지 않고 ! 내 탓이구나!”라는 것을 생각하며 이웃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게 됩니다. 이웃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조건을 버려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입니다. 내 이웃과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 더욱 노력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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