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례자 요한의 생애
세례자 요한은 구세주께서 오실 것을 선포하면서 그분의 길을 준비한 예언자입니다. 요한은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였으며 회개한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의로움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을 “세례자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요한은 서기 28년경부터 팔레스티나를 무대로 세례 활동을 하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한 30년 4월 7일보다 훨씬 전에 정치적인 이유로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성채에서 처형되었습니다. 탄생 대축일은 6월 24일이며, 수난 기념일은 8월 29일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세례자 요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① 일부 유대인들에게 헤로데의 군대를 멸망시킨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여겨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세례자라고 불리는 요한에게 헤로데가 한 일을 복수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정당하게 그를 책벌하셨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헤로데는 요한이 선한 사람이었고, 유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서 그들이 덕을 함양하고 상대방에 대한 정의와 하느님께 대한 신심을 기르도록 하였을 뿐인데도 그를 죽였기 때문이다.
② 평범한 유대인들이 요한 주위에 모였을 때 그들은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 흥분이 절정에 달했으므로 헤로데는 군중들을 설득하는 요한의 놀라운 능력이 모종의 폭동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하기 시작하였다. 군중들은 요한이 권고하는 것은 무엇이나 할 것같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요한이 폭동에 불을 붙이기 전에 먼저 공격하여 그를 제거하려고 작정하였다. 헤로데는 이렇게 하는 것이 상황이 악화되어 위기에 빠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헤로데의 음모로 인해 요한은 앞서 언급한 마캐루스 성채로 사슬에 묶여 압송되었다. 거기서 그는 처형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헤로데 군대가 패배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벌하시고 요한의 원수를 갚아 주시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상과 같은 요세푸스의 진술은 “죄의 용서를 위한 유일회적인 세례를 베풀었기에 별칭으로 세례자라고 불렸다는 점” 과 요한이 “많은 군중들을 매혹시켰고 이를 두려워한 헤로데 안티파스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점”은 복음서와 서로 일치합니다.
아울러 일부 유대인들은 헤로데가 서기 36년 나바테아 왕국의 아레타스 4세에 의해 군사적으로 패한 사실을 요한의 부당한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으로 해석하였을 만큼 요한의 죽음 후에도 그를 흠모하는 군중들이 있었음에도 신약성경과 일치합니다. 또한, 요한을 메시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요한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요한의 제자들과의 경쟁 관계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서 1장은 요한이 즈카르야라는 사제의 외아들로 태어난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요한이 사제직의 계승을 거부하고 광야로 나가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죄의 용서를 거부하고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은 분명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요한의 성장 과정을 언급하는 루카 복음 1장 80절은 요한과 쿰란 공동체와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에세네파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입양하여 에세네의 관습에 따라 교육을 시켰던 것처럼, 어린 요한은 쿰란 공동체에서 종교적 훈련을 받고, 유대의 광야에서 독자적인 예언자요 금욕주의자로 처신하게 되었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세상을 기피하고 광야에서 탈속의 삶을 살면서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정(淨), 부정(不淨)의 기준에 따라 차별했던 쿰란 공동체와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