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기 이름은 “요한”
아이가 태어나면 여드레 만에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 여드레째 되는 날, 동네 사람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습니다.(루카1,59) 그런데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아버지의 역할이었고, 그 아버지가 말을 못하면 당연히 어머니가 해야 합니다.
엘리사벳은 아이(세례자 요한)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사명을 부여하시기 위해 늙은 부부에게 주신 아기입니다. 그러므로 이 아기는 사람들이 이래라 저래라 할 인물이 아닙니다. 이 아기는 하느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과 즈카르야는 아기 이름을 요한으로 계시를 받았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루카1,13)
그래서 엘리사벳은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루카1,60)라고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즈카르야는 답답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이렇게 씁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루카1,63)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벙어리가 입을 열어 하느님을 찬미한 것입니다. 벙어리였다가 “아기 이름은 요한”이라고 글 쓰는 판에 적은 후에 입이 열려 하느님을 찬미하는 즈카르야를 본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줄도 모르고 아기 이름을 이래라 저래라 했고, 나이 들었다고, 벙어리라고 무시하던 자신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즈카르야는 자신이 성소에서 받은 천사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믿지 않았기에 자신이 벙어리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이야기 해 주면서 이웃 사람들의 부족함과 무시를 탓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이 일은 유다 산악 지방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언제나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 자리에 있지 않았지만 소문을 들은 이들도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1,66)하며 궁금해 하였습니다.
신앙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희를 이끄시어 은총 주시는 하느님은 찬미를 받으소서.”라는 찬미와 감사이어야 합니다. 판단하고 비난하고 이간질시키며, 상처를 입히고 모함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말들은 잊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은 하느님 앞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 가능해집니다. 처음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처럼, 자신의 처지나 상황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말고,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신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고, 그래야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