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정결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정결례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정결례를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죄인으로 단정하고, 예수님께 시비를 걸어오자 이사야 예언자의 말로서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마르7,6)

즉 입술로는 하느님을 공경하고 있지만 마음은 하느님께로부터 멀리 떠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따르며 공경한다고 입으로 말은 하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손을 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씻은 손으로 혼자만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밥을 먹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고,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합니다. 포장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포장지 안에 담겨 있는 선물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고 가르친다고 하면서 이들은 형식에만 집착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보기에는 일반 백성들은 모두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대충 밥 먹고 일하러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정결례 규정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밥을 먹고 다시 그 힘으로 일을 하는 것이 하느님 보시기에 더욱 기쁜 일 아니겠습니까?

 

이어서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빌려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말씀해 주십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마르7,7)

백성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 하느님을 섬길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라면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야지 사람들의 규정을 지켜야 할 교리로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가르치는 규정들을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 되고, 사람들의 규정이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가르치면 어느 순간 말로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떠나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가끔은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함께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이 모여서 함께 전례를 거행한다면, 하느님 백성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게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전례를 거행하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강조하다보면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전례의 경건성도 떨어뜨립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귀한 전례에 참례하여, 귀한 은총을 받고, 귀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인간적인 것들이 작용하여 그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미사 중에 잡담을 하거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옆에 있는 이가 미사에 집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미사 중 강론이 복음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면 경건하게 미사에 참례하기 어렵고, 공지사항 시간에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을 장황하게 이야기하게 될 경우에는 미사 중 받은 은혜를 모두 잊어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형식적인 모습과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아 주시고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7,8)

그런데 예수님의 이러한 가르침은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공격적으로 들릴 것이고, 구약 자체도 공격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다교를 부정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다인들의 사고는 하느님 말씀보다는 조상들의 전통 위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할 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음식은 깨끗합니다. 유다인들이 정한 규정들은 인간들의 규정들일 뿐,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마카베오서에서 보면 돼지고기를 먹기보다는 죽음을 택한 늙은 엘르아잘의 영웅적인 정신이나 일곱 아이를 둔 어머니의 순교 이야기에서 음식은 먹음으로써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먹음으로써 하느님을 배교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었기에 목숨을 걸고 먹지 않겠다고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음식이 사람을 더럽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모든 음식은 감사하게 먹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거나 부정하게 하는 것은 물질이나 음식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요빠에서 베드로 앞에 여러 가지 짐승을 담은 보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오고, 먹으라는 소리가 들려왔을 때, 베드로는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는 더러운 것을 먹은 일이 없다고 외칩니다(사도10,14). 보통 유다인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깨끗함과 더러움은 사물에 붙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사고방식을 배격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깨끗함과 더러움의 근원은 사람의 마음에 있습니다.

 

나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고, 나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어떻게 수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생각과 말과 행위가 나를 어떻게 더럽히는지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은 내가 나를 부정하게 만들고, 불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들을 알려 주십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나에게서 나오는 더러움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마르7,21-22)이 인간의 마음 안에서 나온다고 가르치십니다. 온갖 악한 생각과 악한 행동은 음식이나 타인과의 접촉을 통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있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면 결국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없고, 다른 이들에게 상처와 아픈 마음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잘못과 부정함은 내 안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서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를 보지 못하고, 내가 하느님을 바라보지 못하면, 내 안에서 나오는 음행,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같은 여러 가지 악한 행동들과 생각들을 막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더럽혀 지는 것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21-3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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