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신 예수님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신 예수님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십사고 청하였습니다(마르7,32).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손을 얹어 주시기만 하면 귀가 들리고 입이 열릴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비를 청할 때, 예수님께서 한 번도 외면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군중에게서 떼어 놓습니다. 군중들이 믿음 없이 오직 기적만을 바라며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에파타

예수님께서는 병자에게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마르7,33). 이것은 히브리인이 병이나 액땜에 잘 쓰던 관습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사고방식에 자신을 맞춤으로써 당신께서 나쁜 병을 치유하고자 한다는 것을 확신케 해 주십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침은 눈을 치료하는 약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병자에게 내가 너를 치료하려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하신 행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마르7,34) 하고 말씀하십니다. “열려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즉시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생겨라.” 하시니 세상이 생겨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려라.” 하시니 병자의 귀와 입이 열렸습니다. 예수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창조하시는 하느님, 한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됩니다. 그래서 아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시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느님으로 고백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한숨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셨을까요? 이것은 세상 모든 이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바라보시며 느끼시는 가슴 아픔과 애처로움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분명 보시기 좋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보시니 인간은 하느님께서 주신 온갖 좋은 것들을 거부하고, 죽음과 고통을 끌어당겨, 그 속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을 우러러 한숨이 절로 나오지 않을까요?

자녀가 대학에 입학해서 방을 얻어 주었습니다. 도배도 해 주고, 살림살이도 마련해 주고, 이불도 멋진 것으로 장만해 주었습니다. 한 달 후 엄마! 도저히 이렇게는 못살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제가 꼭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해요?”라며 불평을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서 가 봤더니 벽에는 온통 얼룩이 져 있고, 책꽂이에는 책이 하나도 없으며, 의자는 다리가 하나 부러져 있었고, 그릇이란 그릇은 모두 싱크대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이불은 담뱃불로 이곳저곳이 구멍이 났고, 역겨운 냄새가 났습니다. 쓰레기장에 온 것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어머니는 한 숨만 나왔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부여해 주셨는데 자녀가 완전히 망가뜨리고 오히려 부모님을 원망한 것입니다. 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뜻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거스르며 살아가면서 온갖 불평불만을 예수님께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한숨 밖에 안 나오실 것입니다.

 

침묵을 요구하시는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마르7,36)고 분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신 이유는 군중들이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로, 그래서 그 능력으로 로마의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유를 주시는 힘 있는 메시아로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기적에만 관심을 기울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분부하실수록 그들은 더욱더 널리 알렸습니다. 치유 받은 반벙어리는 그 기쁨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뻤으니, 또한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니 주변 사람들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기적 사실들이 알려 지면 알려질수록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의 경계심과 음모는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놀라는 군중들

사람들은 이런 기적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놀라서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마르7,37)라고 말하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마도 성경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때에 소경은 눈을 뜨고 귀머거리는 귀가 열리리라. 그 때에 절름발이는 사슴처럼 기뻐 뛰며 벙어리도 혀가 풀려 노래하리라”(이사35,5-6)는 말씀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메시아 시대에 일어날 일들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지니 놀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제 놀라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내 주변에서도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은 형제자매들을 만나게 됩니다. 말 못하던 이들이 기쁘게 복음을 선포하고, 형제자매들에게 관심 없던 이들이 형제자매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바라보고 기쁘게 인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병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방문하여 위로하며, 비신자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 때문에 하지 못했던 것을 다른 이들을 통해서 힘을 얻어 하고 있는 것일 수 있고, 다른 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못했던 것을 나 때문에 하게 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내가 변화되어야 할 때입니다. 나를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삶의 자리에서 떠나, 듣게 하고 말하게 하는 자리로 옮겨갈 때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모습으로 힘차게 외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구원자이십니다.”하고 외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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