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자 박취득(라우렌시오, 노렌죠)
박취득 노렌죠는 1770년 경에 홍주 고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비록 기록으로는 그의 어렸을 때 행적이 나타나 있지 않지만, 1791년 신해박해 때에 형인 박일득(朴一得)이 천주교 사건으로 투옥된 사실로 보아 그 집안에 이미 천주교의 신앙이 깊이 스며들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795년에 순교한 지홍(池洪) 사바에게서 천주교를 배웠다고 자백한 사실이 문초기록에 나타납니다. 지홍은 지황이라고도 하는데 한국 교회 초창기에 활약한 인물로 주문모 신부님을 영입하는데 공이 컸습니다. 1975년 6월 28일 체포되어 그날로 杖死, 순교하셨습니다.
신해년(1791년)에 전라도 진산에서 윤치중(바오로)와 그의 외사촌 권상연(야고보)가 신주를 불살라 버린 사건이 발단이 되어 박해가 일어납니다. 신해박해로 지방에서 많은 교우들이 박해를 당하고 있을 때, 노렌죠는 면천(沔川) 고을에서 체포되어 옥에 갇혀 있는 교우들을 자주 찾아가 위로하였습니다. 하루는 옥에 있는 교우들이 아침을 들고 있는 중에 그가 용감하게 관문을 두드리고 나아가, 무죄한 사람들을 혹독하게 매질하고, 옥에 가두어 놓는 것은 무서운 죄가 아닙니까?라고 관장에게 외쳤습니다.
관장은 그가 이미 천주교 사건으로 옥에 갇혀 있던 박일득의 동생임을 알자 화가 나서 체포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이내 그는 체포되어 가혹한 매질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흔들리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가벼운 나무칼 대신에 쇠로 된 것을 씌워달라고 관장에게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나무칼이 너무 가벼우니 쇠로 된 것을 씌우게 하시오.”
사실 이때 관장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였습니다. 노렌죠가 그 지방에서 대단한 인심을 얻은 사람이었으므로 백성들이 동요하고 불평을 나타내기 시작한 때문이었습니다. 관장은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그를 멀리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해미와 홍주 관아에 차례로 출두하게 되었으며, 홍주 관아에서는 잔인한 매질까지 당하였습니다.
이렇듯 용감하게 행동하면서 용기를 굽히지 않던 그가 옥에 갇힌 지 한 달가량 지났을 때, 조정에서는 그를 석방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으며, 그는 곧 석방되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 석방의 이유가 무엇인지 자세히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그의 열성적인 신앙 활동은 머지 아니하여 그를 다시 체포당하게 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