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님의 이름으로 겸손하게 받아들이기

주님의 이름으로 겸손하게 받아들이기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받아들이고 싶은 대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난에는 관심 없고 영광에만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명을 잘못 이해하고 있고, 예수님께서 세상의 왕이 되시면 나는 국무총리, 나는 국방부장관, 나는 무슨 장관을 하겠다며 서로가 서열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서 어떤 사람이 높은 사람인가를 잘 가르쳐 주십니다. 자신을 낮추는 이가 높은 사람임을,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 어린이와 같이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겸손과 사랑을 가르쳐 주려고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제자들 가운데에 세우신 다음 아이를 껴안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아이를 껴안으시는 이유는 아이가 예쁘기도 하지만, 아이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르9,37)

 

아이는 힘없는 존재, 나약한 존재,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존재, 피곤하고 오히려 내가 도와주어야 할 존재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를 자신과 동등한 자리에 놓고 계십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가난하고 오갈 데 없는 고아를 받아들이거나 보호해 주는 것은 당연하고 또 많은 이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한다면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고,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공동체의 기본 법칙입니다. 부족한 사람들을 내치지 않고, 힘없는 이들을 외면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을 섬기는 이들의 삶의 모습이고, 자신을 낮추는 이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유혹은 교묘하게 파고들어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보다는 있는 사람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서슴없이 손을 내밀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나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입니다. 뻔히 불편해지고, 손해를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앙인이라면 이런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알아두어야 할 것은 그가 비록 보잘 없다 할지라도 그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걸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은 겸손의 길이었고, 섬김의 길이었고, 사랑의 길이었습니다. 나 또한 겸손의 길과 섬김의 길과 사랑의 길을 걸을 때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가 될 것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21-3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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