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제자들의 자리다툼

제자들의 자리다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예수님께서 왕이 되셨을 때,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를지에 대해서 논쟁을 하였습니다. 그것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시간을 주신 다음에 이제 물으십니다.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마르9,33) 그러나 제자들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누가 가장 큰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길에서 논쟁하였기 때문”(마르9,34)입니다.

 

말을 하면서도 그것이 하지 말아야 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비밀이야. 너만 알고 있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돌아서면 후회가 밀려옵니다. 내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 나를 후회하게 만들기도 하고, 내 안에서 나오는 것들이 나를 기쁘게 만들기도 합니다. 후회되는 것들은 숨기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하면서 한숨을 내 쉬기도 합니다. 그리고 쉽게 잊혀 지지 않습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를 늘 사랑으로 안아주어, 주님께서 원하시는 생각과 주님께서 원하시는 말과 주님께서 원하시는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무슨 일로 논쟁하였는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것이 부끄러운 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마르9,34)라는 주제로 서로 자신이 큰 사람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곧잘 랍비들에게 그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누가 첫째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학파에 따라서 그 대답은 달랐습니다. 의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토라와 미슈나(구전 율법들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율법)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하는 자도 있었고, 원로나 순교자라고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그런 생각조차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 안에서 모두 하나이고, 주님 안에서 모두 평등하며, 주님 안에서 모두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고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9,35)

이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첫째가 되려는데 어떻게 꼴찌가 되고, 더 나아가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할까요? 하느님 나라에서 첫째는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들 안에서 살아가고,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며,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평화와 구원입니다.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의 외아드님까지도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겸손과 희생과 자비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고 몸소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에서 높아지는 방법은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첫째가 되려 하기보다는 꼴찌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출세를 원하고, 높은 자리를 원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경쟁하며, 어떤 때는 부정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꼴찌가 되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꼴찌가 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가 되기 위해서 양보하고, 배려하고, 공정한 경쟁을 하면서 뒤쳐진 사람들을 끌어 주는 것입니다. 부족한 이들을 뒤에서 밀어 주고, 함께 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때는 맨 앞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라는 것입니다. 비록 경쟁하고, 세상것만을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느님께는 그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슬기로우며 사랑스럽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섬김을 받으려 하기 보다는 섬겨야 합니다.

봉사의 기쁨을 알고 있는 이들은 섬김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낮추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깨끗하고 편안한 것만을 찾으려 한다면 결코 봉사하지 않고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알고 있는 제자들이라면 예수님의 섬김의 삶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따라 하려고 합니다. 섬기는 이들은 낮아 보입니다. 미천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섬김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에서 얼마나 귀하게 되는지를 알게 된다면 섬김을 받기 보다는 섬기려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알고 계시기에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당신 자녀들이 섬기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21-3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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