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승훈의 세례와 한국 교회

이승훈의 세례와 한국 교회

1783년 겨울 이벽은 아버지를 따라 북경으로 가는 이승훈이 천주교에 대해 더 알아오기를 부탁했고, 북경의 북당(北堂) 성당에 도착한 이승훈1784 그라몽(Grammont) 신부로부터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선교사를 보낸 적이 없는 나라에서 스스로 찾아와 세례를 청한 것은 그 자체로 놀라움이었다. 이승훈은 세례를 받기 전에 박해를 각오할 것, 첩을 두지 않을 것등을 약속하였고, 귀국길에 천주교 서적들과 성물 등을 가지고 왔다. 1784년 겨울, 이승훈은 서울 수표교 근처의 이벽의 집에서 첫 세례식을 거행함으로써 조선에 첫 신앙공동체[교회]가 형성되었다. 이 때 이벽(세례자 요한), 정약전과 정약용(요한) 형제,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이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초기 교회가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을사년(1785)에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권일신 등이 이벽의 주도로 김범우의 집에서 예식을 거행하던 중 순찰을 돌던 추조(형조) 관원들에게 적발되었다. 이것을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라고 한다. 생전 처음 보는 이상한 모임이었기에 모두 형조로 끌려갔다. 신자들이 대부분 남인 양반이어서 곧 훈방되었으나 중인 김범우는 감옥에 갇혀 신문을 받고 배교를 강요당하였다. 그는 유배형을 받아 귀양을 떠났고, 형조에서 받은 형벌의 여독으로 유배지에서 1786년 가을에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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