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10,2)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10,2)

예수님께서 계시는 곳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빕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군중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르10,2)라는 주제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합니다. 만일 안 된다고 하면 모세의 규정을 어기는 것이니 백성들이 예수님께 등을 돌릴 것입니다. 또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동생의 아내와 결혼한 헤로데를 공적으로 질책하는 것이 되니 헤로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헤로데는 조강지처를 쫓아내고 그 대신 이복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안 된다고 하면 분명 헤로데에게 즉시 보고를 할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동생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가 헤로디아의 분노를 샀고, 결국 목숨을 잃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된다.”고 하면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가르치신 예수님께서 말로만 그러셨구나!”하면서 백성들이 예수님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답에 흥미를 가지고 바라보았을 것이고,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의도를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수님께서 다른 말씀을 하실 분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세는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마르10,3) 하고 반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가르침을 몰라서 그렇게 물으신 것은 아닙니다. “너희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를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세는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다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왜 그랬을까요? 신명기 24,1-4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이 이혼은 쫓겨난 여인 편에서 보면, 자기가 자유롭게 되었다는 공적인 문서를 받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재혼을 하기 위하여 필요했던 양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쫓겨난 아내는 재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를 쫓아 낸 남편은 그 여인이 두 번째 남편에게도 이혼을 당하든가 사별하는 경우에도 다시금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율법에 따라 아내에게서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을 발견한 남편은 그 여인을 쫓아내기 전에 이혼장을 써 주어야만 했습니다.

이혼장은 히브리말로 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율법학자가 쓰고 두 증인이 서명하고 처의 후견인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내는 자유롭게 되고 부모가 있으면 친정에, 또 부모가 죽었을 경우는 친구 또는 친척 집으로 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나이가 어린 어린이는 아내의 손에 남겨지지만, 부양의 의무는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여섯 살 난 사내아이는 아버지와, 딸은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는데, 어느 경우나 아버지에게 부양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이혼의 구실이 된 아내에게 무엇인가 수치스러운 일이란 성경에서는 확실히 또 오직 하나 아내의 불륜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만일 무엇인가 아내에게 비난받을 중대한 일이 남편 쪽에 있다면 이혼을 할 권리를 잃게 되었습니다(신명22,13-19.28-29). 그리고 유배 이후의 유다인의 성서문학은 혼인을 맺으면 풀 수 없다는 데로 기울고 있었습니다(말라키2,14-16;잠언31,10-31).

 

랍비 힛레루는 결혼 후 10년이 지나도 아이가 없다.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친척 앞에서 불손한 태도를 취했다. 베일을 쓰지 않고 외출을 했다. 다른 남자와 말을 했다. 고기를 지나치게 태웠다. 국의 소금 맛이 너무 짰다. 가정의 비밀을 다른 이들에게 흘렸다.”는 이유들이 아내의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랍비 아키바는 더 아름다운 여인을 보았을 경우 전처를 내 쫓을 수 있는 권리를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무슨 이유가 닿기만 하면 남편이 아내를 버릴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혼장이 얼마나 악용되고 있는가를 단편적으로 드러내는 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마르10,5)는 말씀을 통해서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과 닫힌 마음을 가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모세가 왜 그렇게 가르쳤는지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사실 모세의 율법은 유다인들이 생각한 것처럼 하나의 특권이 아닙니다. 모세는 430년간 종살이하면서 굳어진 그들의 마음 상태를 알고 계셨기에 허용을 했던 것입니다. 사실 모세는 이혼을 금지하는 법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 종살이하던 이들의 윤리의식을 끌어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모세는 여인들의 인권을 위해서 이혼을 허락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잘못된 이혼 관습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남편은 이혼장을 쓸 수 없습니다. 만일 이혼장을 쓰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다면 전처의 권리가 아직 성립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 간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혼뿐 아니라 일부다처제까지도 금하십니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는 것도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로마에서는 여자에게도 남편과 이혼할 권리가 있었습니다. 부부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며 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는 혼인 생활은 사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갈등만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합니다. 온 마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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