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야고보와 요한의 청원

야고보와 요한의 청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마르10,35)하며 자신들을 청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마르10,36)하고 물으십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은 놀라운 말씀을 드립니다.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마르10,37)

이 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수난과 죽음을 생각하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앞으로 다가올 영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고 계시는데 그들은 영광의 옥좌에 앉을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이나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세 번 다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예고에서는 베드로의 인간적 사랑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했고,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반대했습니다. 두 번째의 예고에서는 제자들 가운데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 될 것인지를 따지는 논쟁이 뒤따릅니다. 그리고 세 번째 예고에서는 오늘 이 말씀에 나오는 것처럼 야고보와 요한의 자리에 대한 청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영광을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마르10,38)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마르10,38)

예수님께서 마시는 잔은 수난의 잔이고, 예수님께서 받으실 세례는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타에 오르셔서 고통과 죽음의 세례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 있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마르10,39)

모르고 있기에 당당하게 대답한 것입니다. 모르면 용감해 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 있게 대답했던 이들이 예수님의 수난이 시작되는 성목요일의 겟세마니 동산에서는 모두가 도망을 쳤습니다. 내가 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도 막상 하려고 하면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엄청난 고통이 따르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당당하게 수락한다는 것은 교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게 될 것이다.”(마르10,3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사도들 중에서 맨 처음의 순교자가 되어 기원 44년 예루살렘에서 목 베임을 당했고(사도12,2), 요한은 파트모스 섬에 유배되었다가 에페소에서 죽을 때까지 고난의 사도직을 수행하였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그런데 영광만을 바라본다면 십자가가 주어질 때, 그 영광을 바라보지 않고 십자가만 바라보기에 주저앉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지 않으면 결코 주님께서 마신 잔을 마실 수 없고, 주님께서 겪으신 고통에 동참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마르10,40)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정해진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미리 정해져 있다면 굳이 열심히 살아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정해진 이들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주님을 증거 하면서 살아가는 이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걷는 이들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정해진 이들 안에는 나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아직 자신들의 욕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해석하고, 영광의 자리만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그것이 모두 허물어지고,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 강림이 있은 후에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청을 드린 것을 듣게 된 다른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자리를 야고보와 요한이 탐냈기 때문입니다. 질투가 섞여 있습니다. 세상적인 욕심을 아직 버리지 못했기에 야고보와 요한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겪으실 수난을 알고 있었더라면 결코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수난의 길은 아무나 걸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들 모두 야고보와 요한에게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유혹, 명예를 얻고자 하는 유혹. 그리고 그런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아직 믿음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강림을 체험하게 되면 제자들은 그런 자신들의 모습을 부끄럽게 여기며, 더욱 충실하게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21-30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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