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하는 하느님 나라의 봉사자들
하느님 나라의 봉사자들은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낮출 때 주님께서는 나를 들어 올려 주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마르10,44)
종이 된다는 것은 형제자매들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삶을 삶으로 가르치셨습니다. 비록 제자들은 언제나 영광만을 생각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섬김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섬김을 받으러 오셨다면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가장 힘센 왕궁의 외아들로 태어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섬기러 오셨기에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로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10,45)
몸값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치러 왔다고(마르10,45) 하시는데, 몸값은 노예를 해방하기 위하여 치르는 돈을 말합니다. 어떤 이가 종으로 팔려갔다면 그를 사랑하는 이가 그 사람의 몸값을 내고 그를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왜냐하면 종으로 팔려간 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를 사랑하여 대신 몸값을 치루는 이를 속량자라고 하고, 그 사람의 몸값을 속량전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죄의 종살이를 할 때, 우리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는 당신 생명으로 몸값을 치러주고,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풀어주시기 위해 몸소 인간이 되셨고, 몸소 십자가를 지시고 속죄제물이 되시어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전 전 생애는 “인간을 사랑하셨고, 인간을 섬기러 오셨음”이 예수님의 삶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든 이들의 몸값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몸값”(마르10,45)이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왜 모든 사람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일까요? 이 말씀은 예수님이 누구는 빼고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스스로 몸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 목숨으로 몸값을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냥 죄의 노예로 살아가렵니다. 방해하지 마세요…”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사람(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마음을 열고 주님께로 나아간다면 주님의 고통이 보입니다. 그 고통은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섬기는 삶을 통하여 주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버리고 자신을 낮추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