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누구나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고, 안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좋은 것은 보여 주고 싶지만, 좋지 않은 모습은 안 보여 주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보여질 때는 그런 척하기도 합니다. 기도하는 척, 너그러운 척, 용서하는 척…, 물론 그런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율법학자들은 모세의 율법과 조상들의 전통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면서 하느님 나라로 백성들을 이끄는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학자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하느님 백성이 지켜야 하는 것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려 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회당에서 율법을 읽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그들이 맡은 소임이었습니다. 이 제도를 유다 사회는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였고, 예수님께서도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마태23,2-3)고 말씀하시면서 율법학자들의 역할을 인정해 주셨지만 행실만은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계명을 가르치기는 하였지만 지키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르치는 이는 입으로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으로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을 통하여 배우는 사람이 신앙을 잃을 수도 있고, 신앙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이들은 자신의 삶이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메시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나의 행동을 보고 인사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나에게 존경의 인사를 한다면 나는 말과 행동에 있어서 더욱 조심하며, 배려하고,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입으로만 가르치는 이도 가르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 가르침의 일차적인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삶으로 가르치면 좋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라고 임무를 부여받았기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들에게 이런 저런 좋은 가르침을 주지만 그렇게 가르치는 아버지도 막상 동료들과의 관계나 어떤 일이 주어지면 그 가르침과 반대의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옳은 것을 이야기 합니다. 아무리 나쁜 일을 하는 아버지라 할지라도 자녀들에게는 바르게 살아라. 의롭게 살아라. 하느님을 섬기며 살아라.”라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버지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아버지도 그렇게 안 하시면서 저희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들을 때는 말 하는 사람이 아니라 듣고 있는 나 자신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마태23,2-3)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이렇게 꼬집으십니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마르12,40)

당시 과부들은 힘없고 나약한 존재들을 대표했습니다. 재산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재산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부들이 재산관리를 제대로 못하니까 율법학자들이 그것을 해 주겠다고 하면서 과부들의 재산을 등쳐먹었던 것입니다. 율법학자들은 누가 재산분배에 관한 자문을 해 오는 것을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은 재물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꼬집으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 자신이 재물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덕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길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선을 감추기 위해서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12,40)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모습과 내 모습을 비교해 보고, 율법학자들의 모습을 내 안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다 듣고 계십니다. 내가 행동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느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모두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는 나의 생각과 말과 행위로의 잣대로 나를 바라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느님께 바라는 그대로 내 이웃에게 행해야 합니다. 주님께로부터 의롭게 칭찬받고 싶은 나는 의로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판단은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하는 사람이 그럴 수 있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기도하니 그만큼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보며 주님 안에서의 나의 모습을 먼저 생각하는 내가 되어 봅시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31-34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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