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성월의 제정
구약의 마카베오 후서에 보면 전장에서 전사한 군인들을 위해 하느님의 성전에서 제사를 바치게 합니다(2마카 12,39-46참조). 유다 마카베오는 기원전 163년경 독립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을 위한 속죄의 제사와 기도를 바칩니다. 전사한 이들의 옷에서 얌니아의 우상이 부적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속죄의 기도를 바친 것이며, 죽은 이들의 부활을 청하는 기도이기 때문에 본래적인 의미의 위령기도라고 하겠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오로는 “주님께서 그 날에 그가 주님으로부터 자비를 얻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으로 오네시포로라는 사람을 위해 위령 기도를(2티모1,18)하고 있습니다.
초세기부터 가톨릭 교회는 죽은 이들을 자주 기억하고 그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는 등 많은 기도를 바쳐왔습니다. 로마 시대에 있었던 삼백년간의 박해 당시에 신자들의 유일한 피난처였던 지하 공동묘지(까따꼼바)의 비석에도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이 많이 새겨져 있는데, 그 내용은 죽은 이들이 속히 죄의 사함을 받아, 천국의 영원한 행복에 들게 해 달라는 것들입니다. 이때부터 이미 교회 전례에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문이 삽입되기 시작했습니다.
교부 테르툴리아노(211년경)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죽은 이들의 매년 기념일에 드리는 기도문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러한 기도가 오랜 전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히폴리토(170-236)는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중에 사용되던 기도문을 소개하였고, 아르노비오(?-327)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모임에서 사용된 것으로 여겨지는 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한 평화와 용서를 청하는 기도문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344-407)는 죽은 이를 위한 미사, 위령 기도와 죽은 이를 위한 자선 행위 등은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사도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교회가 죽은 이들을 위한 공식 전례 축일을 제정한 것은 10세기 경에 이루어졌습니다. 중세 초기에 수도원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수도자들을 기억하던 관습에서 시작되었고, 이를 지역 교회가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위령의 날이 전례 안에 등장하였습니다.
11월이 위령성월이 된 것은 998년에 클뤼니 수도원의 5대 원장이었던 오딜로에 의해서입니다. 오딜로는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지내도록 수도자들에게 명령하였습니다. 11월 2일에 죽은 이를 위해 특별한 기도를 드리고 시간 전례를 노래할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이것이 널리 퍼짐으로써 11월 한 달 동안 위령 기도가 많이 바쳐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11월이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 성월로 정해졌습니다.
교황 비오 9세, 레오 13세, 그리고 비오 11세(1922-1939)가 위령 성월에 죽은 이를 위해 기도를 하면 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특전을 베풀면서 위령 성월의 신심은 더욱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이로써 11월은 세상을 떠난 부모나 친지의 영혼, 특히 연옥 영혼들을 위해 기도와 희생을 바치며, 자신의 죽음도 묵상해 보는 특별한 신심의 달이 되었습니다. 또한 11월은 전례력으로 연중 마지막 시기에 해당되고, 계절도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시기이기에 죽음을 묵상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며, 죽은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기 좋은 때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