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의 교훈
충청도 사투리 중에 “시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절”이라는 표현은 친구나 가까운 사람에게 쓰는 표현으로 “바보”보다는 약한 표현입니다. 추운데 옷을 얇게 입고 나와서 덜덜 떠는 친구에게 “에이 시절아! 옷 좀 두툼하게 입고 오지.”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시절”은 상황파악을 잘 못하고, 때를 모르는 친구에게 하는 표현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지금 처한 상황을 잘 파악해야 하고, 때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교훈을 통해서 때를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어느덧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사람의 아들이 문 가까이 온 줄 알아라.”(마르13,28-29)
신앙인들은 “언제”, “어떻게” 종말이 닥칠 것인가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말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알아야 합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인생을 돌아보게 만들어주는 좋은 이야기입니다. 해마다 새로운 잎을 내는 무화과나무를 통해서 계절의 흐름을 알 수 있듯이 신앙인들도 예수님의 재림의 사건이 문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건강의 청신호와 적신호가 있습니다. 건강의 청신호일 때는 문제가 없지만 적신호가 오면 즉시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든지, 잠시 손발이 마비가 온다든지 하면 몸에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낫겠지”하고 아무렇지도 않듯 일상생활을 하거나 심한 운동을 한다면 결국 불행한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런 친구를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시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하고, 처방을 받으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지만,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생각으로 인하여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스스로 느끼는 “청신호와 적신호”가 있습니다. “늘 시간이 주어지겠지! 내일 하면 되겠지”하고 뒤로 미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일이 나에게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내일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내일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늘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되고, 준비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귀한 손님을 기다리면서 밖을 늘 살피는 사람처럼 그렇게 주님을 기다리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준비하면서 살아가는 삶, 언제든지 주님을 맞아들일 수 있도록 주님을 향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런 마음이 있고, 행동으로 옮겨지고 있다면 이것은 분명 “내 신앙생활의 청신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