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선택된 이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선택된 이들을 부르시는 예수님

선택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가슴 뜨거워지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주님께로부터 선택받는 것이니 더더욱 기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선택은 예수님의 선택이지만 나의 선택이기도 합니다. 내가 예수님을 선택했기에 예수님도 나를 선택하시는 것입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당신께로 나아오도록 은총을 주셨기에 내가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고, 예수님의 은총 안에서 그 선택에 대한 확신의 삶을 살았기에 예수님께서 나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선택은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실 때, 예수님께서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마르13,27)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모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이들) 천사들에 의하여 사방에서(온 세상에서) 모여들게 되어 성인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고, 이것이 바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기도생활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32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33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 34 그때에 임금이 자기 오른쪽에 있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36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25,31-36)

 

그런데 이런 축복의 말씀을 들은 의인들은 당황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마태25,37-39)

 

하느님 사랑의 척도는 이웃사랑입니다. 내가 얼마만큼 하느님을 사랑하는지는 내가 얼마만큼 이웃을 사랑하는 지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그런데 이때 내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내 생활을 바꾸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받을 수 없게 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의 특징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지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니  자연스럽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니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28,19-20)

 

그러므로 가족을 신앙으로 돌보고, 대자녀들을 지속적으로 신앙에로 이끌고 함께 기도하며, 삶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증거하는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주님께서 부여해 주신 사명을 수행하면서 살아갈 때,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은 기쁨으로 가득 찬 날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아버지의 뜻을 알고 계셨고, 아버지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마르13,32)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그 날과 그 시간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간을 전할 사명은 부여받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종말을 더 잘 준비하기 보다는 더욱 혼란에 빠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분께서 오신다는 것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준비하고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주님을 선택하고, 언제나 주님께 선택받는 내가 되도록 확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삶은 언제나 주님을 향한 깨어있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성실하게 자신에게 부여받은 사명을 수행하며, 이웃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삶. 그리고 그 삶은 하느님 나라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 함께 선택된 이들의 삶을 힘차게 살아갑시다.

이 글은 카테고리: jubonara, 나해 31-34주일, 연중시기(나해), 주보자료실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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