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공동체가 환난 중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도록 티모테오를 테살로니카로 보냈습니다. 테살로니카 공동체의 힘을 북돋아 주고 공동체의 믿음을 격려하여, 환난 속에서 아무도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티모테오로부터 테살로니카 형제자매들이 굳건히 신앙생활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종말을 넘어선 희망과 믿음을 가질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테살로니카 전서를 쓰게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먼저 세 가지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첫째,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 둘째, 다른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 셋째, 테살로니카 공동체에 대한 바오로와 실바누스와 티모테오의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먼저 주님 때문에 주님 안에서 생겨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랑에 머물고 있어야 합니다.

먼저 서로 지니고 있는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사랑과 자비를 베풀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가지고 있기에 그 마음은 사랑의 불꽃이 되어 다른 쪽으로 불타오르게 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다른 사람을 아끼고 위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어떤 대상을 매우 좋아해서 아끼고 즐기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상대방을 향하여 마음을 열게 하고, 끌리게 하고, 좋아하게 하고, 아끼게 하여 줍니다. 그리고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이 사랑이 지나쳐 나 자신을 어렵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창조하셨고, 사랑 안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내 안에 담긴 사랑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주님께서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여러분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시어,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 아멘.”(1테살3,12-13)

 

그런데 하느님 아버지 앞에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선다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요? “()이라는 것은 한자를 보면 하품 흠()자를 사용합니다. 하품이라는 것은 사람이 피곤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또 하품이라는 것은 같은 종류의 물건 중에서 가장 품질이 낮은 물건을 말합니다. 그래서 흠은 먼저 그 사물의 불완전하거나 잘못된 점을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 모든 것들 중에 완벽한 것이 얼마나 있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것들에는 몰라서 그렇지 다 조금씩 흠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흠은 보기 나름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꽃은 예쁘지만 너무 빨리 자는 것이 흠이라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것이 있으면 그 불완전함을 극복할 수 있는 이들이 그것을 완전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불완전함을 느끼지 못하게 만듭니다.

둘째로 흠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인격이나 언행 따위에 나타나는 결점을 말합니다. 약속을 잘 안 지키는 것도 흠이 될 수 있고,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흠이 될 수 있고, 부정적으로 접근하여 상대방의 흠을 잡아내고 상대방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들이 그의 흠이 될 수 있습니다. 또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 순간에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 개인의 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흠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고, 나 또한 흠이 있는 사람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셋째로, 흠은 물건이 깨어지거나 상해서 긁힌 자리를 말합니다. 어떤 것의 아주 미세한 흠이나 결함이 있으면 그것의 가치는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동차가 무엇인가에 부딪쳐서 흠이 생긴다면 속이 상할 것입니다. 아주 귀한 도자기가 바닥에 떨어져서 이가 빠지고 금이 갔다면 그 가치는 뚝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흠이라는 것은 다른 것은 안 그렇지만 그것만 정상적인 것보다 질이 떨어지거나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흠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내가 보기에 흠이 없는 그도 나 자신이 흠이 많다고 분명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만이 흠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우리는 테살로니카 서간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테살로니카 공동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있는지를사도들로부터 배웠습니다. 그리고 테살로니카 공동체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고하고 당부합니다. “더욱더 그렇게 살아가십시오.”(1테살4,1)

배운 것을 살아가는 삶, 사랑을 실천하는 삶. 그 삶이 바로 흠 없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리고 흠 없이 살아간다.”는 것보다 그 흠을 메꾸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우리 그렇게 살아갑시다. 흠을 메꾸며 살아갑시다. 그럴수록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거룩하게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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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에 1개의 응답

  1. 관리자 님의 말:

    옥에도 티가 있다.
    “옥에도 티가 있다”라는 말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나 물건이라도 한 가지 결점은 있다는 말로 쓰이는데, 이것은 춘추전국 시대의 이야기에서 비롯됩니다.

    춘추전국시대에 어느 나라에 진귀한 옥이 있었는데 옆 나라 왕이 갖고 싶어서 성 10개와 바꾸자고 했습니다. 옥을 가진 나라가 약소국이어서 마지못해 한 신하가 가지고 가서 옆 나라에 옥을 바쳤는데 옆 나라 왕은 약속한 대로 성을 10개 줄 생각은 안 하고 모르는 척 계속 옥만 봤습니다.

    신하가 옆 나라 왕이 이대로 성을 줄 것 같지 않아 한 가지 꾀를 내었는데, 옥에 티가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었습니다. 옥에 티가 있다는 말을 들은 옆 나라 왕은 옥을 돌려주었고, 후에 본토로 돌려보내고 나서야 신하에게 깜빡 속은 것을 눈치 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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