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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둥락 신부는 1785년 베트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사제가 된 뒤 그는 열정적으로 선교 활동을 펼쳤다.
베트남 교회의 박해 시기에 중추 역할을 하던 그는,
관헌들의 끈질긴 추적으로 체포되어 하노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55세였다.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안드레아 둥락 신부와 동료 순교자들을 성인의 반열에 올렸다.
사두가이들은 죽음 뒤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현실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부활과 영생은 그들에게 어색한 가르침이었다.
그러기에 이상한 논리를 펼친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쉬운 설명으로 그들을 대하신다(복음).
◎ 알렐루야.
○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도다.
◎ 알렐루야.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7-40
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베트남 순교 성인들의 수난을 공경하여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저희가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언제나 주님께 충실하게 하시며,
저희 자신을 주님께서 기꺼이 받으시는 제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로다.
주 하느님,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여 하나의 빵을 함께 나누고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주님의 사랑 안에 한마음이 되게 하시며,
끝까지 견디어 영원한 상을 받게 하소서. 우리 주…….
베트남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1533년입니다.
중국으로 가던 유럽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에는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이 임금으로 있었습니다.
1615년 예수회가 베트남에 정식으로 파견되면서
베트남의 선교는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
베트남의 사도’로 불리는 예수회의 로드 신부는 20년을
베트남에 머물며 수만 명에게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박해는 산발적으로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프랑스는 박해를 끝낼 목적으로 베트남을 침공하였고,
1883년 마침내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음으로써 박해를 종식시켰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베트남의 수많은 순교자들 가운데
안드레아 둥락 신부를 비롯한 117위를 1988년 성인의 반열에 올렸습니다.
이 가운데 96위가 베트남 사람이었고, 21위가 다른 나라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성직자는 58명이었는데, 37명이 베트남 출신의 사제들이었습니다.
베트남 교회는 한국 교회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숱한 박해를 견디어 낸 것이 그렇고,
103위 순교 성인을 모시고 있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117위의 순교 성인을 모신 것도 그렇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늘 교회가 기념하는 둥락 안드레아 신부는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세례명도 같고, 순교한 사연도 비슷합니다.
두 나라 순교자들에게 평화의 기도를 청합시다.
저녁노을(모니카)
♬ Lux aeterna[그들에게 영원한 빛을 빛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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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구 도무지 게시판에 태그가 안먹히네요…나중에 배우겠습니다. 요즘 시험기간중이라서요^^;; 수고해 주세요~
오소서. 성령이여!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하심으로써
사두가이 사람들의 죽음과 부활의 질문에 입을 다물게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세상에 살면서 회개하고
용서하며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 즉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제대로 따라 살아갈 때, 바로 그것이 하느님 나라를 사는 것이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데 모범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세례를 받은 저 역시 이 땅에서 부터 하느님 나라를 살기 위하여
회개함으로써 기쁘게 살며, 가정과 직장안에서 크고 작은사랑을
실천하는데 힘써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주님! 하느님 나라에 가면 시집가고 장가드는 일도 없다하셨지요?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구요.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될 거라고요…
주님!
제가 그러한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서 미리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소서.
또한 성령의 이끄심으로 기쁨 충만하게 하시어 더 이상 죽음과 종말의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조금 아주 쬐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 당신의 말씀을 모두 알아 듣지 못하지만...
아무튼...
저의 좁은 소견으로는 아니!
부족한 저의지식으로는 성경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의 말씀을 모두 듣는다는 것이
저의 머리로는 한계라는 생각과 감히 당신의 말씀에
토를 단다는 것은 당신의 자녀로써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지요
그럴 때마다 제가 생각하는 것은 무조건 믿어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주님!
모든 것이 부족한 저 헬레나는 이렇게 당신의 말씀을 당신의 마음을
모두 알아듣지 못하지만 믿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당연히 믿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은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사실 제가 이해를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요
그래도 다행이지요? 주님!
부족하나마 제가 이만큼이라도 당신의 말씀을 이해하고 알아들으려
노력하는 그 마음은 당신을 사랑한다는 증거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말씀에 당신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당신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에
희망을 갖으며 영생을 얻기 위해 당신의 말씀을 굳게 믿으며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닌 살아있는 자의 하느님이신
당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죽음을 없애시고,
복음으로 생명을 환히 보여 주셨도다”
아멘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묵상하며
♬ Eres Tu / Mocedades
복음을 묵상하면서 문득
‘내가 사두가이는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제머리속을 흔들어 놓았답니다.
늘 아버지께 신앙을 고백하면서
또다른 저의 내면엔
현실에 대한 보따리가 더 크게 자리잡고 있진
않았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죽음뒤의 세상을 인정하지 않는 사두가이들처럼~~
그러면서 늘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아버지를 공격하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보았습니다.
함께 나누고,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면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전해야 했었는데
제 주머니의 이익만을 고집하면서 현실에만
목숨을 걸었던것 같아서 가슴이 메여왔습니다.
그리고 내심
“내 목숨이 다하면 그만이지 뭐~”
라는 엄청난 생각을 했었음도 고백합니다.
그런걸보면 사두가이나 저나 다를바가 없지요.
그런 저를 혼내시기라도 하시듯
아니 사두가이들의 반박에 쇠기를 박으시듯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라고~
육신의 잠듬과 동시에 다시 시작임을 모른채
안이하게 생활하진 않았나를 생각해 봅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얼마나 깊이있게
얼마나 의롭게 살았는지~~
또한 저의 영혼의 양식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다시금 돌이켜 봅니다.
육신은 죽어도 영혼의 눈은 감기지 않는 것처럼
제가 나중에 어떠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뵈올지 모르겠지만
그때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열심히 영적인 눈으로 매사에 임하면서 움직일것을
다짐해 봅니다.
지금의 제가 변하지 않으면 다시난다 해도
지금과 별반 다를바가 없음을 가슴깊이 묻어봅니다.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
예수님을 옭아매려 하는 사두가이들이 반박하자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두가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하시는 말씀인지라
시원하게 가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가슴이 덜컹했답니다.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두가이들의 모습이
제모습은 아닌가 싶어서지요.
매번 신앙고백을 하면서
제게도 그들처럼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는지를
깊이 반성합니다.
육신의 죽음에 이어 영혼의 눈은 감기지 않는 것임을
저 스스로 잊고 살진 않았는지~~
그러기에 현실에만 연연하여 이기의 욕심보따리를 채우기에
급급하여 등을 돌리지 않았는지요.
아버지!
이 부족한 딸이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습니다.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 모른채도 했습니다.
그리고 현실의 끈을 쥔손에서 힘을 빼지 못했음도 반성합니다.
힘을 뺀다하여 도망가는 것이 아닌데
저의 부족이 헛힘을 쓰면서
되려 중요한 것에는 힘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아주 끝인줄로 알고 시작임을 망각한채 어리석게 살아온 저에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면서 영의 부를 채우게 하소서.
그리하여 볼 눈의 압을 올려주시어
멀리~ 깊이~ 바로 볼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삶으로 드러나게 하시어
일분일초가 헛되지 않게
작은 것들에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지 않게 은총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