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대림 제2주일(인권 주일)(12/9)


    인간 존중과 인권의 신장은 복음의 요구이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짓밟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기로 하였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이 그에 맞갖게 살아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 것이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대림 시기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회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외침을 준비하면서 거친 옷과 야생의 음식으로 지냈습니다. 허리에는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살았습니다. 안락하게 대림 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회개는 먹고 입는 단순한 행동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회개에 대한 깨달음을 청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나타나 회개를 외친다. 이사야 예언자의 예언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요한은 메시아의 출현을 준비하는 이였다. 그리스도의 반대자가 될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에게 그가 독설을 퍼붓고 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알렐루야
    복음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12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의 겸손한 기도와 예물을 굽어보시고, 아무런 공덕이 없는 저희를 너그러이 보호하시며 도와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예루살렘아, 일어나 높은 곳에 서서, 하느님에게서 너에게 오는 기쁨을 바라보아라.
    영성체 후 묵상
    인간에게는 누구나 욕망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본능입니다. 욕망은 조절하면 힘이 되지만, 조절하지 못하면 삶을 어둡게 합니다. 무엇으로 욕망을 조절할 수 있겠습니까? 절제를 통한 연습밖에 없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의 증거를 행동으로 드러내라고 합니다. 부질없는 것은 끊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리라는 말씀입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이를 실천할 때 진정한 회개가 시작됩니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이 신비로운 제사에 참여한 저희를 생명의 양식으로 기르시니, 저희에게 지상 것을 슬기롭게 활용하며, 끊임없이 천상 것을 찾도록 가르쳐 주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회개는 뉘우쳐 고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뉘우치는 행위에만 매달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뉘우쳐도 흡족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완벽한 뉘우침은 없습니다. 어떻게 마음에 쏙 드는 뉘우침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그것 역시 욕심일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고치려는 마음을 지니면 살아 있는 회개가 됩니다. 그러니 회개는 결코 침울한 행동이 아닙니다. 새롭게 출발하려는 다짐을 어떻게 어둡다고 하겠습니까? 생동감 있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림 시기의 회개는 밝은 행동입니다. 한 해의 끝에 서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긍정적인 자세입니다. 축복에는 감사를 드리고, 부족함에는 자비를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새로운 출발은 불가능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시작하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뉘우침과 새 출발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예수님께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누구나 가까이 갈 수 있는 모습입니다. 아무라도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모습입니다. 우리 역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새로운 모습으로 출발해야 합니다. 누구나 편안함을 느끼는 생활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의 본질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주님 곁으로 날 이끄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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